줄넘기

 

 

두 소녀가 즐겁게 웃으며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다. 그 옆에는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한 소년이 있다. 소년이 소녀에게 자기도 고무줄 놀이에 끼워 달라고 부탁한다. 소녀는 잠시 걱정스런 표정으로 망설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끼워 준다. 즐겁게 고무줄 위를 넘나드는 소년. 얼마 후 소녀가 걱정했던 일이 벌어진다. 어느 새 나타난 소년의 아비가 그의 뒤통수를 냅다 갈기고 집으로 끌고 들어간다.

 

K군은 낮잠에서 깨어났다. 또 고무줄 놀이 꿈이었다. 어렸을 적, 그는 두 누이와 고무줄 놀이를 하는 것을 즐겼다. 그가 특별히 여성적인 성향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경쾌하게 두 발을 움직이다 보면 어느 새 걱정이 사라졌고, 그래서 고무줄 놀이가 좋았다. 하지만 평소에는 친구 같은 아버지가 고무줄 놀이를 하면 엄하게 돌변했기 때문에 마음 놓고 즐길 수 없었고, 점차 고무줄 놀이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그 후로 K군은 갑갑한 일이 있을 때면 고무줄 놀이 꿈을 꾸곤 했다. 두 소녀가 한가로이 고무줄 위를 넘나드는 꿈.

 

“코단 분대 5분 내로 평화의 집 앞으로 집합!” 소대장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코단. Cordinate-On. 의 약어. 관광객이 판문점 내부에 들어왔을 때 휴전선 주위에서 경계를 서는 임무를 의미한다. 공동경비구역 경비중대의 근무는 25일의 사이클로 이루어진다. 훈련 5일, 장비점검 5일, 다시 훈련 5일, 5분 대기조 5일, 판문점 경계 근무 5일. 마지막으로 꿀맛 같은 외박 5일. K군은 나지막이 욕을 뱉으며 휴게실을 나선다.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5일 간의 훈련과, 군화도 벗지 못하고 선잠으로 버텨야 하는 5분 대기조 생활의 육체적 스트레스에 비할 바가 아니다. K군은 판문점 경계 근무가 주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그곳은 직선이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관광객을 태운 차가 지나갈 때면 보여주어야 하는 절도 있는 경례 동작. 코단 근무를 하러 나갈 때 북한군에게 과시해야 하는 로봇과 같은 제식 동작들. 그 어디에도 곡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게 직선이며, 그것을 과시하는 것은, 곧 체제의 우월성과 동의어였다. 심지어 판문점 내의 남측과 북측의 공간을 나누는 선도 높이 10센티미터, 폭 40센티미터의 직각 콘트리트로 이루어져 있었다. K군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든 것이 직선을 이루는 이 공간이 갑갑했다.

 

K군은 북측의 통일의 집을 마주보는 자리에 섰다. 콘크리트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저만치 북한군 부사관 하나가 K군을 마주보고 있다. 서로 경쟁이나 하듯 온 몸을 직선으로 꼿꼿하게 날을 세웠다. 그날의 관광객들은 초등학생들이었다. 가이드의 인솔을 받은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이 K군과 콘크리트 선 사이에서 발랄하게 웃고 있었다.

 

K군은 지난 주에 있었던 사건 하나를 떠올렸다. 앞 소대가 남긴 상황일지를 인수인계 받으며 알게 된 일이었다. 콘크리트 선 너머에 있던 감나무 열매가 선을 넘어 남쪽으로 떨어졌다. 주위에 서 있던 북한군은 선 너머로 팔을 뻗어 감을 집어갔다. 상황일지에는 감이 떨어진 시각과, 그 북한군이 팔을 뻗어 선을 넘은 시각. 그리고 감을 주워 팔을 북쪽으로 다시 집어 넣은 시각이 초 단위로 기록되어있었다. K는 그 상황일지를 쓰고 있었을 병사의 진지한 표정을 떠올렸다.

 

순간 K군의 눈 앞에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아까 그 초등학생 무리들과 일행으로 보이는 소녀 두 명이 콘크리트 선 위에서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었다. 고무줄을 사이에 두고 소녀의 두 발이 남과 북을 수 없이 넘나들고 있었다. 그들의 맑은 표정은 맞은편에 서있던 북한군 부사관의 굳은 표정과 묘한 부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K군은 상황일지를 작성하고 있을 후임을 떠올렸다. 아마 사색이 되었을 것이었다. 저 수없이 많은 월북 횟수를 어떻게 다 일일이 초 단위로 기록하겠는가? 아니면 그저 ‘소녀 둘 휴전선 위에서 고무줄놀이 함.’이라고 써야 하나? 어느 쪽이든 우스운 일이었다. 어느 새 K군의 입가엔 장난스런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 때였다. 소대장의 손바닥이 K군의 뒤통수를 냅다 갈긴 것은. 소대장은 어리둥절해 하는 K군의 멱살을 잡고 평화의 집으로 끌고 들어가며 말했다. “어디서 쳐 자고 지랄이야? 이 새끼가! 너 이번 외박 취소다. 근무 서면서 졸다니. 아주 개념을 상실했구만?”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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