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정성진 대담

신자유주의라는 야만을 넘어서

A. 캘리니코스/정성진



정성진
저 연구와 각종 활동으로 바쁘신 중에도 방한하여 대담에 임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R 선생은 영국 요크대학 정치학교수이면서
현존하는 세계 제1급의 맑스주의 이론가로서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뜨로쯔끼주의 정당인 영국사회주의노동자당(Socialist
Workers Party)의 중앙위원으로 활발한 정치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또 약20여권에 이르는 다작으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선생의 저작은 한국에서도 이미 10여권 번역 출판되었고 저 자신도선생의 『맑스의 혁명적 사상』(The
Revolutionary Idea of Karl Marx)을 번역한 바 있습니다. 선생의이력과 관련하여 먼저 질문을 드리자면
선생은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출생하고 어린 시절 거기서 살았는데, 이같은 경험이 선생이맑스주의자가 된 데 어떤 영향을 끼친 바가
있는지요?


켈리니코스
그렇습니다. 내가 태어난 짐바브웨는 영국의식민지여서 인종차별이 아주 심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청소년 시절 백인권력은 대중적
도전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나의 의식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나는 그때부터 인종차별의 문제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성진 한데 대부분의 제3세계 태생의 맑스주의자와는 달리 선생은 이른바 ‘제3세계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뜨로쯔끼주의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켈리니코스
로쯔끼주의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분명하게 구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에 대해 적대적이지는 않습니다.예컨대
뜨로쯔끼주의자들은 짐바브웨에서 백인통치에 항거한 게릴라전을 강력하게 지지했습니다. 내가 뜨로쯔끼주의자가 된 데는 두 가지요인이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나의 청소년 시절 반인종주의 백인으로서 민족해방투쟁을 지지하지만 직접 참여할 수 없었던백인
맑스주의자들이 생겨났는데, 나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둘째, 나는 열아홉살 때인 1960년대말 영국 옥스포드대학에입학했는데,
이때는 급진적 학생운동의 시대였습니다. 당시 영국 학생운동에서 지배적인 극좌파 조직은 뜨로쯔끼주의 단체였습니다. 그시대의 급진적
학생운동 분위기와 짐바브웨에서의 반인종주의 민족해방운동의 경험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의 의식은 급진화되었습니다.당시 영국의
정치환경을 감안하면, 내가 뜨로쯔끼주의자가 된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뜨로쯔끼주의: 68년 세대로서의 선택


정성진 그러나 68년 세대들이 모두 뜨로쯔끼주의자가 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선생이 뜨로쯔끼주의, 그중에서도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뜨로쯔끼주의를 선택하게 된 특별한 이론적·정치적 이유가 있을 듯한데요?


켈리니코스
선 1968년 프랑스에서 학생운동과 함께 발생한 총파업은 나에게 노동자계급의 중심성이라는 맑스주의 개념이 단지 이념이
아니라사회적·정치적 현실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전쟁을 지지하고, 노동자계급의 생활수준에 큰 타격을 준 1960년대
영국노동당의 정치적 파산은 지식인들의 급진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내가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뜨로쯔끼주의를
선택한것은 국가자본주의론 때문입니다. 소련이 미국과 마찬가지로 억압적인 자본주의 착취체제의 일부라고 보는 국가자본주의론은 내가
그것을처음 접했을 때부터 올바른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국가자본주의론이 나를 국제사회주의 뜨로쯔끼주의로 인도한 것이지요.


정성진
가자본주의론 문제는 조금 뒤에 논의하도록 하고, 맑스주의의 현황에 대한 선생의 생각을 듣고자 합니다. 1989∼91년
소련과동유럽에서 스딸린주의체제가 몰락한 것은 선생을 비롯한 뜨로쯔끼주의자들이 이미 50여년 전부터 수행해온 반스딸린주의
투쟁의정당성을 극적으로 확인해준 사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선생은 『역사의 복수』(The Revenge
ofHistory)라는 책에서 고전적 맑스주의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소련과 동유럽국가를 모종의 사회주의와
동일시하는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스딸린주의이며, 따라서 그것의 붕괴는 고전적 맑스주의의 재흥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낙관한 바
있습니다.그러나 스딸린주의체제 몰락 이후의 경과는 스딸린주의 정치의 폐기와 고전적 맑스주의 전통의 신장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스딸린주의는 개량주의와 포스트맑스주의로 전신(轉身)하면서 여전히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반면, 뜨로쯔끼주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진보진영에서 여전히 주변적입니다. 선생은 스딸린주의체제의 붕괴가 스딸린주의 정치의 청산과 고전적 맑스주의 전통의
‘르네쌍스’로분명하게 연결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스딸린주의체제 붕괴 이후의 맑스주의


켈리니코스
생이 지적한 대로 스딸린주의는 혁명정치의 발전에 거대한 장애물입니다.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소련을사회주의와
동일시한 스딸린주의가 그동안 전세계 노동자대중에 끼친 부정적 영향은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또 실제적으로도 이들의투쟁의 심각한
패배를 초래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역사의 복수』에서 스딸린주의체제의 붕괴가 급진적 사회주의 정치의 급속한 부활로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부활이 내 예상만큼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첫째, 나는 스딸린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전세계 사회민주주의 좌파들이 소련에 그동안 투자한 엄청난 양의 정치적자본(political
capital)을 과소평가했습니다. 소련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사회민주주의자들조차 소련의 존재를 사회가시장과는 다른 방식으로
조직될 수 있다는 신념을 입증하는 사례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소련이 붕괴하자 데리다(J.Derrida)가 말했듯이 수많은
좌파들은 ‘애도’ 상태에 빠진 것이죠. 둘째, 소련의 붕괴가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노동자계급운동의 오랜 패배의 시기 후에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1984∼85년 영국 광산노동자 파업의 패배는 그중 하나입니다.이러한 노동자운동의 패배는 사기 저하와
자신감의 결여를 초래했습니다. 이같은 사기 저하와 ‘애도’ 현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해1989년 이후 전세계 좌파들은 곤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0년(1989∼99)은 세계사에서는 극히 짧은 기간입니다.사회주의적 대안을 현안이 되게 하는 근본적 요인인
부당하고 정의롭지 못하며 모순적인 자본주의의 문제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정성진 그러나 상당수의 진보진영 지식인들은 그같은 현상을 보고, 이는 스딸린주의뿐만 아니라 고전적 맑스주의 자체에 어떤 심각한 모순과 한계가 내재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켈리니코스
런 주장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내가 속한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경우, 1990년대는 패배의 시기가 아닙니다.
우리는1990년대에 괄목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또 그리스와 독일에 있는 우리 자매조직들 역시 1990년대에 크게 성장했으며,
한국의자매조직도 국가의 집요한 탄압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고전적 맑스주의 정치는 상대적으로 잘
되고있습니다. 노동자계급운동에서 완만하지만 전반적인 좌파세력의 회복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정성진
선생이지지하는 국제사회주의 정치의 핵심이론인 국가자본주의론에 대해 질문하겠습니다. 구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성격을 자본주의의
일종으로규정하는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론에 대해서는 맑스주의자들로부터도 많은 비판이 있습니다. 맑스 자신의 자본주의 규정에
비추어보았을 때이들 지역 및 오늘의 북한 체제를 자본주의라고 보기 힘들다는 거지요. 우선 선생은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노동력의 상품화 현상이 소련에서 실제로 존재했다고 보십니까?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사회로서의 소련


켈리니코스
선 나는 자본주의의 본질은 노동력의 상품화가 아니라 임금노동의 존재와 자본의 경쟁적 축적의 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는’자본일반'(capital in general)의 추상수준과 ‘다수자본'(many capitals)의 추상수준의
결합에근거해서만 정당하게 분석될 수 있으며, 이 두 수준을 분리해서 논의하는 것은 방법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어쨌든 소련의
경우는물론 노동력의 상품화가 이루어진 사회였습니다. 1920년대말 강제집단화 과정에서 직접생산자인 농민대중의 생산수단으로부터의
분리,즉 토지로부터의 무자비한 추방이 이루어졌으며, 그들은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던 공업단지에 임금노동자로 유입되었습니다.
또소련에서는 노동시장이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기업들은 노동자를 끌어오기 위해 서로 경쟁했습니다. 스딸린 공포정치가 절정에
달한1930년대에도 연간 노동이동률은 100%가 넘을 정도로 매우 높았습니다. 소련 붕괴 직전, 기업과 지역에 따라
임금수준에상당한 차이가 존재했는데 이는 소련에서 노동시장의 존재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정성진 하지만 소련 노동시장의 성격과 작동방식은 서방 자본주의의 경우와 상당히 달랐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한 차이가 질적인 차이는 아니라고 보시는 겁니까?


켈리니코스
본주의에서 노동시장은 제도적으로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고 봅니다. 예컨대 남아프리카 광산에서 발달한
이동노동(migrantlabor) 체제는 자본주의에 존재하는 노동시장 형태의 다양성을 보여줍니다. 남한·소련·영국 노동시장의
작동방식 간에 차이가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도적 편차일 뿐입니다.


정성진
선생의 국가자본주의론은 현대자본주의에서는사적 자본간의 시장경쟁이 아니라 국가자본간의 군사적 경쟁이 결정적 의미를 갖는다고
전제하고, 소련에는 일국적 수준에서 사적자본간의 시장경쟁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세계적 수준에서 국가자본간의 군사적 경쟁이 관철되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라고 규정할 수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일부 맑스주의자들은 국가자본주의론의 경쟁 개념은 특별잉여가치를
획득하기 위한 신기술도입 경쟁과가격경쟁, 요컨대 시장경쟁을 핵심으로 하는 맑스의 경쟁 개념과는 다른 것이며, 이같은 맑스의 경쟁
개념이 소련에서는 현실화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소련을 맑스적 의미의 자본주의라고 규정할 수 없다고 비판합니다.


켈리니코스
맑스가 경쟁을주로 기업간 시장경쟁의 형태로 분석한 것은 사실입니다. 19세기 자본주의의 성격을 감안하면 당연한 것이지요. 그러나
19세기말이후 자본주의의 전반적 변화가 이루어지는데, 이는 힐퍼딩(R. Hilferding)이 말한 자본의 집적·집중을 통한
금융자본형성 경향을 띨 뿐만 아니라, 기업간 시장경쟁이 국가자본간의 군사적 경쟁을 수반하고 때로는 그것에 의해 압도되는
과정이었습니다.이는 20세기 자본주의 발전의 일반적 특징이며 소련에만 특유한 현상이 아닙니다. 예컨대 1930년대 주요 자본주의
국가는전반적으로 국가자본주의로 전환했습니다. 독일의 나찌경제, 미국의 뉴딜체제 등이 그것이며, 또 독일과 일본처럼
군비증강을경제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소련은 이러한 일반적 추세의 극단적 사례였을 뿐입니다. 다수자본의
경쟁이국민국가간의 군사적 경쟁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 경쟁 작용양식의 수정을 의미합니다. 기술혁신에 의해 창출되는
초과이윤의추구가 경쟁의 추진력으로 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것은 독점·과점의 형성이 노동가치론의 부분적 수정을 의미하는
것처럼,노동가치론의 수정을 초래한 20세기 자본주의의 많은 새로운 양상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정성진
소련 붕괴이후 국민국가들간 경쟁의 주된 형태는 군사적 경쟁이 아니라 다시 경제적 경쟁의 형태로 되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소련
붕괴이전까지 자본주의에서 맑스의 가치법칙이 수정된 형태로 작동했다면, 이제 세계경제에서 맑스적 의미의 경쟁은 수정된 형태가
아니라순수한 형태로 작동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켈리니코스
우리가 군사화된 국가자본주의에 대해 이야기할때, 가치법칙의 표현 형태가 시장경쟁의 경우와 다르다는 것이지, 가치법칙의 작용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이른바 세계화의결과로서 국민경제가 국제적 경쟁에 노출되고 국가적 혹은 사적 독점이 약화되면서
신고전파 경제학적 의미가 아니라 맑스적 의미에서순수한 형태의 경쟁이 격화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군사적
경쟁이 오늘 세계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고생각하면 커다란 잘못입니다. 걸프·발칸전쟁에서 보듯이 미국은 군사력을 통해
세계적 규모에서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있습니다. 동아시아에서도 중국과 대만 간의 긴장상태, 한반도의 긴장상태는
계속되는데, 이는 오늘날 지구상에서 군사적 경쟁이엄존함을 보여줍니다.


정성진 군사적 경쟁은 20세기뿐만 아니라 21세기에도 세계의 주요한 현실일 것이라는 이야기지요?


켈리니코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일본과 유럽이 미국과 군사적으로 경쟁할 것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제국주의간의 경쟁은 군사적 경쟁이 아니라 경제적 경쟁의 수준에서 훨씬 더 첨예하게 표현될 것입니다.


정성진 그렇다면 국가자본주의론에서 수정하거나 보완해야 할 점은 없습니까?


켈리니코스
떤 이론도 완전무결한 것은 없습니다. 나는 국가자본주의론이 소련식의 관료적 국가자본주의의 동학에 대해서는 적절하고 만족할
만한설명을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국가자본주의론은 1차대전 당시 부하린(N. Bukharin)에 의해 처음으로
개발되었습니다.물론 국가자본주의론은 더욱 정교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본축적이 특정한 발전단계에서는 국가를 주체로 하고,
점증하는군사적 경쟁을 수반한다는 국가자본주의론의 기본적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성진
스딸린주의문제에 대한 질문을 하나 더 하겠습니다. 선생은 ‘사회체제’로서의 스딸린주의는 ‘왜곡된 사회주의’도 아니고 자본주의의
변종, 즉관료적 국가자본주의라고 규정하면서도, ‘이데올로기’로서의 스딸린주의는 일종의 맑스주의라고 간주했습니다. 이것은 논리적
모순아닌가요?



사회체제로서의 스딸린주의와 이데올로기로서의 스딸린주의


켈리니코스
스주의 전통이 맑스주의가 무엇인지를 정의하려는 수많은 경쟁적 시도들(예컨대 고전적 맑스주의와 스딸린주의의 대립뿐만
아니라,서구맑스주의·프랑크푸르트학파·알뛰쎄르 등)로 구성되어왔다는 것은 중요한 현실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스딸린주의가 두 가지
수준에서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째, 사회체제로서의 스딸린주의, 즉 국가자본주의입니다. 거기에서
맑스·레닌주의는지배이데올로기로서, 그 사회의 국가종교로서 기능했습니다. 둘째, 스딸린주의는 세계의 수많은 사회주의자들이 그들이
성취하고자 하는사회를 정식화하려 한 이데올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세계의 수백만의 진지한 사회주의 노동자계급 투사들이
스딸린주의이데올로기를 자신들의 열망을 표현하는 방편으로 수용해온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모순이라면 이것은 현실의 모순이지,
논리적 모순은아닙니다.


정성진 선생처럼 스딸린주의를 맑스주의의 일종이라고 인정하면 스딸린주의를 제대로 청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켈리니코스
는 여전히 스딸린주의가 이데올로기로서는 사회민주주의·프랑크푸르트학파·알뛰쎄르(L. Althusser) 등과 마찬가지로맑스주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려는 하나의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스딸린주의가 ‘무엇이 맑스주의의 본질인가’라는문제에 대해
올바른 답을 제공했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맑스주의의 본질은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입니다. 스딸린주의가 지향하는소련·북한
같은 종류의 사회는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회입니다.


정성진
선생은『뜨로쯔끼주의』(Trotskyism)에서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뜨로쯔끼주의를 맑스주의 이론의 발전에 기여한 ‘진보적인’
과학적연구프로그램이라고 주장하고, 그 근거로 (1)관료적 국가자본주의론 (2)영구군비경제론
(3)’일탈한영구혁명론'(deflected permanent revolution) 등의 이론적 혁신을 예시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21세기정세는 뜨로쯔끼주의 문제설정에 또 한차례의 진보적인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 이유는 다름아니라
1970년대 이후자본주의와 스딸린주의 및 사회민주주의의 황금시대가 종식되었고, 그래서 이 이론들의 설명 대상 자체가 소멸했기
때문입니다. 첫째,관료적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한 소련·동유럽 체제가 붕괴하고 이들이 좀더 사적인 그리고 국제화된 자본주의로
전화되고 있으며, 둘째영구군비경제에 기초한 전후 자본주의의 황금시대가 끝나고 세계자본주의가 구조적 위기, 장기불황 국면으로
들어갔으며, 셋째 ‘일탈한영구혁명’이라고 규정된 제3세계의 반제국주의적 민족주의혁명체제도 소멸하거나 변질되었다는 것이지요.


영구군비경제론: 이윤율 저하 경향의 해명


켈리니코스
금 전에 국가자본주의론은 오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여전히 중요한 이론이라고 말했는데, 영구군비경제론은 1950∼60년대
전후호황을 설명하기 위해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을 적용하려 한 시도입니다. 전후 호황은 동방과 서방에서 매우 높은 수준의
군비지출에의존했습니다. 그러나 군비지출에 기초한 영구군비경제는 냉전 종식 훨씬 이전인 1960년대말부터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같은영구군비경제의 쇠퇴가 1960년대말 1970년대초 서방자본주의 전체에 걸친 이윤율의 저하를 설명할 수 있는 결정적
요인이라고생각합니다. 물론 오늘의 문제는 이윤율 저하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위기가 극복되고 있는가,
혹은 주요자본주의 국가가 수익성의 위기를 극복했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황이 영구군비경제론이 대상으로 했던 시기와 많이
달라진 것이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구군비경제론은 전후 호황의 성격 그리고 그 종식을 설명하기 위해 결정적으로 중요한
배경을설명합니다. ‘일탈한 영구혁명론’의 경우, 그 이론의 배경이 된 상황, 즉 중간계급의 민족주의 지식인이 제국주의에
반대하는농민대중운동을 지도하는 상황은 이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특수한 적용 사례라고 할 수 있는 영구혁명의 문제,
즉제3세계에서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투쟁이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투쟁과 융합되는 경향은 최근
인도네시아대중투쟁에서 보듯이 여전히 주요한 현안입니다.


정성진 국가자본주의론과 관련하여 좀더 질문하겠습니다. 선생은 개방과 민영화가 급속하게 진전되는 옐찐의 러시아사회를 국가자본주의론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옐찐의 러시아도 과거 소련처럼 국가자본주의라고 규정하는 건가요?


켈리니코스
론 그렇진 않습니다. 오늘 러시아에서 시장자본주의로의 이행이 이루어지고 있고 경제적 권력이 사적 기업으로 이전되는
것은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는 소련이 붕괴한 1991년에 시작된 것이 아니며, 이행의 형태가 노멘끌라뚜라의 권력에
의해결정되고 있습니다. 과거 소련에서 권력을 잡고 있던 사람이 오늘 사적 자본가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지배계급의 인적
구성의연속성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또 국가는 여전히 막강한 경제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옐찐의 러시아는 민영화되고
있는국가자본주의(privatising state capitalism)라고 묘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성진
딸린주의 문제에 대한 논의는 그 정도로 하고,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된 질문을 하겠습니다. 선생은 현실의 정치경제와 계급투쟁에관한
저작도 있지만, 『알뛰쎄르의 맑스주의』(Althusser’s Marxism) 그리고 가장 최근 저작인『사회이론』(Social
Theory)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저작에서 알뛰쎄르, 포스트모더니즘, 분석맑스주의, 네오베버주의적역사사회학 등 각종 사회이론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뛰쎄르, 분석맑스주의, 네오베버주의적 역사사회학에대해서는 다소 우호적인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는 ‘반동적’이라고 규정할 정도로 대단히 비판적입니다. 그러면서도포스트모더니즘이 토마스 쿤(Thomas
Kuhn)이 말한 ‘정상과학'(normal science)의 지위에 올라섰다고 말한 바도있는데,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는 왜
그토록 비판적입니까?


환멸과 투항의 철학, 포스트모더니즘


켈리니코스
뛰쎄르는 철학을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 정의가 썩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내가 하고 있는 것은그같은
이론상의 계급투쟁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유행하는 이론들을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관점, 즉 고전적 맑스주의의 관점에서접근하고,
그 이론들의 효과가 긍정적인지 아닌지 판단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분석맑스주의나 역사사회학의 경우 정치적 효과는 긍정적인것과
부정적인 것이 복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경우 정치적 효과는 대체로 부정적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에 대해훨씬 더
비판적입니다.


정성진 포스트모더니즘이 어떤 점에서 그렇게 부정적인지요?


켈리니코스
스트모더니즘은 바이러스처럼 지식인들 세계에 퍼지고 있는 대중적 현상입니다. 지적 경향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세계는 이해할
수없는 파편들의 집합으로서 변화시킬 수도 없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메씨지는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 퍼져
있는환멸감을 반영하는데, 우리는 이에 대해 당연히 강력하게 투쟁해야 합니다. 또 내가 포스트모더니즘이 ‘정상과학’이 되었다고
한것은 영국과 미국에서 대부분의 인문사회과학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틀에 따라 제도화하는 현실을 지적하고자 한 것입니다. 학생이
좋은학점을 받기 위해서는 포스트모더니즘 입장에서 보고서를 써야 하고, 교수가 되거나 저서를 출판하기 위해서도
포스트모더니즘을수용해야 합니다. 매우 역설적이게도 말로는 개방을 강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정말 교조적 형태로 제도화하고
있습니다. 이에대해서는 정치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지성적 차원에서도 강력하게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오늘처럼지식인사회를 압도하게 된 것은 1970년대말 이후 선진국에서 좌파가 패배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의 지적 우수성 때문이
아니라사회적 역학관계 때문이라는 말이지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예컨대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다시 고양되면 전반적인
이데올로기적·지적환경은 변화할 것입니다. 1995년 겨울 프랑스에서 공공부문의 총파업이 일어나자, 부르디외(P.
Bourdieu)가 저항적인좌파 사회과학의 상징으로 떠오른 것이 그 예지요.


정성진 그렇다면 포스트모더니즘에는 해방적인 요소, 진보적인 요소가 전혀 없으며, 진보진영은 포스트모더니스트들과 연대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켈리니코스
스트모더니즘과 관련된 이론가들을 모두 제쳐놓아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예컨대 푸꼬(M. Foucault)와
들뢰즈(G.Deleuze) 같은 이들은 현실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려고 노력했으며, 흥미롭게도 자신들이 포스트모더니스트가
아니라고주장했습니다. 내가 동의하지 않는 것은 개개의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들이라기보다, 그들이 유포하는 ‘투항의 철학’입니다.


정성진
국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은 IMF위기 이후 실업과 부익부 빈익빈 같은 정말 모던한 자본주의적 모순이 표출되면서 퇴조하고있습니다.
그 대신 ‘맑스로 돌아가자'(return to Marx)는 것이 진보진영의 새로운 유행으로 되고 있습니다. 특히 작년1998년은
세계경제위기 속에서 바로 그 세계화와 경제위기를 정확히 예측한 것으로 보이는 맑스의 『공산당선언』 출간 150주년을맞는 해라서
그런지 몰라도 ‘맑스로 돌아가자’는 구호가 더 설득력있게 들렸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부 진보진영의 주장은『공산당선언』 후
150년 동안 레닌·뜨로쯔끼 등을 주요한 징검다리로 온갖 역경을 뚫고 발전해온 고전적 맑스주의의 역사를 마치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건너뛰어 ‘맑스로 돌아가자’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한계도 있다고 봅니다.


다시 맑스로!


켈리니코스
역시 ‘맑스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 이는 것은 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세계적 규모에서 자본주의가 겪는 곤란에 대한 인식을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맑스로 돌아가자’는 것은 그 자체로서는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나는 매년 첫 강의시간에학생들에게
『공산당선언』을 읽게 합니다. 자본주의의 역동적이며 세계적인 성격에 대한 맑스의 묘사는 바로 오늘의 세계에 대한 것인듯 너무나
신선하고 직접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산당선언』을 비롯한 맑스의 텍스트를 그 맥락에서 분리해서 그저 텍스트자체로만
간주해서는 안됩니다. 맑스의 텍스트가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우리는
노동자계급운동의 역사에 개입해야 할 것입니다. 확실히 1989년의 부정적 효과는 지식인 세계에서 볼셰비즘이 수용되기어렵게
되었다는 것인데, 우리는 물론 이에 대해 저항해야 할 것입니다.


정성진 데리다의 『맑스의 유령』(Spectres de Marx)은 ‘맑스로 돌아가자’는 생각을 확산시키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켈리니코스『맑
스의 유령』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그 책은 ‘맑스로 돌아가자’라는 유행이 일기 전인 1993년,그러니까
신자유주의가 극성을 부릴 때 출판되었습니다. 그때 데리다는 분연히 일어나 자신은 맑스주의의 정신에 공감한다고 말하고,그 책을
남아프리카 공산당 지도자 하니(C. Hani)에게 헌정했으며, 신자유주의를 공격했습니다.유령학(spectrality)의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맑스 분석이 모호하다는 점, 그리고 맑스주의의 정신이라는 관점 등 문제점도있습니다. 데리다가 맑스주의의 전통,
운동으로서의 맑스주의와 거리를 두고 맑스의 유령에 대해 모호한 공감을 표명한 것도맑스주의의 정신이라는 관점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인적으로 데리다가 이런 책을 쓴 것을 환영합니다.비록 그가 맑스주의에 대해 머뭇거리면서 또
모호하게 공감을 표명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라는 좌파적 입장을공개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입니다.


정성진 ‘맑스로 돌아가자’는 분위기 속에서 한국의 일부 진보진영은 네그리(A. Negri)류의 자율주의적 맑스주의(Autonomist Marxism)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네그리의 맑스주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켈리니코스
그리는 중요한 맑스주의 철학자이며 이딸리아 국가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개인적인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를체포하려는 이딸리아 정부에 반대하여 그와 연대해야 합니다. 하지만 네그리 이론의 정치적 영향은 대단히 부정적입니다.
무엇보다그가 맑스주의를 권력의 이론으로 개조했기 때문이죠. 그는 자본주의를 ‘자본일반’으로, 즉 노자간의 대립관계로 환원하고 또
그관계를 생산과정에서 분리합니다. 그런데 ‘자본일반’을 ‘다수자본’에서 분리하면 착취와 지배가 왜 발생하는지
설명하기어려워집니다. 맑스는 경쟁을 통한 상이한 자본들의 상호작용이 개별자본으로 하여금 살아남기 위해 착취하고 축적하는 것을
강제한다고말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자본가는 왜 착취하는가?’라는 물음에 어떻게 답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자본가가 사악한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본성은 원래 탐욕적이고 공포에 떨며 공격적이라는 홉스(Hobbes)의
사상으로귀결되는 것이지요. 네그리는 그 대신 푸꼬에 관심을 갖는데, 푸꼬가 바로 권력의 이론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푸꼬 역시
권력을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합니다. 푸꼬는 도처에 권력이 존재하고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왜 저항이
발생하는지설명하지 못합니다. 이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다시 니체의 팔에 안겨야 합니다. 니체는 형이상학적인 권력의 우주학을
개발함으로써 이문제를 해결하지만, 이는 절망적인 해결이며 가장 기괴한 형태의 형이상학으로 도피하는 겁니다. 이것이 네그리의 가장
큰 이론적문제입니다. 실천적 관점에서 네그리의 영향은, 그가 노동자들의 자생적 투쟁을 특권화하기 때문에, 유럽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조직된노동자들의 틀 밖에서, 종종 노동조합과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대립하면서, 운동하도록 고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매우
잘못된접근입니다. 노동조합의 관료적 지도부와 개량주의·의회주의 정당이 사회주의 변혁을 성취하는 데 장애물일지라도, 대다수
노동자대중이그들을 따른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혁명적 사회주의도 노동자계급 대중과 관계하는 방식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성공할수 없습니다.


정성진 언뜻 보기에는 아주 급진적인 것 같은 네그리의 ‘노동거부’라는 슬로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켈리니코스
천적 차원에서 ‘노동거부’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슬로건입니다. 물론 그 슬로건은 급진적 학생이나 일부 청년
영구실업자들에게는약간의 호소력을 가질 수 있겠지요. 나는 어제 부산에 갔는데 부산의 실업률이 15%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15%의 문제는자본주의적 노동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노동의 부재입니다. 실업자에게 혹은 실업으로 위협받는 사람들에게 노동을
거부하라고 촉구하는것은 문제를 진지하게 접근하는 것이 아닙니다. 맑스가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에 대해 그토록 많이 논의한 것은,
노동자들은 생산과정속에서만 자본주의에 도전하고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를 변혁할 수 있는 집단적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노동거부’란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를 제거할 수 있는 장소로부터 도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파산한
전략입니다.


정성진 ‘노동거부’라는 네그리의 슬로건은 혁명전략으로서는 터무니없지만, 사회주의를 ‘노동의 자기실현’과 동일시하는 전통적인 사회주의 개념에 대한 비판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부분은 없을까요?


켈리니코스
본주의에서 노동은 정말 끔찍하게 인간을 타락시키고 소외시키지만, 자본주의를 제거한다는 전략적 관점에서 작업장은 중심적
의의를갖습니다. 1987년 이전과 비교하여 남한사회가 비교적 자유로운 사회가 된 것은 실업자들의 반란 때문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대중파업 때문이지요. 물론 그밖에도 사회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자기실현이 주로 노동을 통해 이루어질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에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지만, 이는 우리가 지금 수행해야 하는 전략적 문제와는 아주 다른 것입니다. 지금 지구상에는
기본적의식주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수십억 인구가 있습니다. 그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사회주의의 과제의 일부일 것인데, 이는
노동의엄청난 팽창을 요구할 것입니다. 따라서 사회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폐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매우 장기적인 과제일 것입니다.


정성진
스주의에 대한 논의는 이 정도로 마치고 이제 세계경제의 현황에 대한 선생의 생각을 듣고자 합니다. 선생은 작년 세계경제위기를다룬
글에서 세계자본주의가 벼랑 끝에 몰렸다고 표현하면서 세계대공황의 가능성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세계자본주의는
여전히불안정하지만, 1997∼98년 아시아·러시아 및 남미의 금융위기 시기에 팽배했던 파국적 상황에서는 일단 벗어난 것으로
보입니다.선생은 1년 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세계경제가 대공황에 임박해 있다고 보시는지요?


세계경제의 미래: 대공황인가? 호황인가?


켈리니코스
가 그 논문을 탈고했던 시기는 1998년 10월이었는데, 당시는 정말 심각한 금융공황이 주요 자본주의 경제를 위협하고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조차 대공황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한 것이지요. 하지만 나는 그 논문에서 향후 세계경제의전망을 몇가지
나열했는데, 1930년대 같은 대공황은 그중 하나의 씨나리오였을 뿐이며, 자본주의 국가의 정책도 결정적인 변수라고했습니다. 결국
미국의 연방준비은행과 다른 주요 자본주의 국가의 중앙은행이 공조하여 금리를 인하하고 LTCM 같은 헤지펀드파산의 충격을
최소화했습니다. 주요 자본주의 국가, 중앙은행의 공조 개입이 오늘의 세계경제를 일시적으로 안정시켰습니다.


정성진
계대공황 임박론과는 달리, 많은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이른바 미국의 ‘신경제’ 패러다임을 근거로 21세기
세계경제는세계화·정보화를 바탕으로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샤이크(A. Shaikh)를 비롯한 일부 맑스주의
이론가들도1968∼73년 이후 시작된 세계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장기불황은 1980년대말경 끝났으며 오늘 세계자본주의는
장기상승 추세에있다고 주장하면서, 지난 1997∼98년 아시아 경제위기는 이미 1980년대말 시작된 세계자본주의의 장기상승
국면의 한에피소드로 간주합니다.


켈리니코스
이른바 ‘신경제’ 패러다임은 호황기의 현상, 특히 투기적 주식시장 붐의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1920년대말 미국에 이와 똑같은
이야기, 즉 경기순환은 사라졌고 모두가 주식시장에서 부자가 될 것이라는주장이 유행했지요. 1960년대 호황기에도 비슷한 주장이
유행했습니다. 요즘 이야기되는 ‘신경제’ 패러다임 역시 최근 미국의단기간의 투기적 성장을 특권화한 주장으로, ‘신경제’
패러다임이 주장하는 생산성 상승 명제는 맑스주의자 브레너(R.Brenner)뿐만 아니라 주류경제학자 크루그만(P.
Krugman)에 의해 논박되었습니다. 샤이크는 내가 존경하는 매우 진지한맑스주의 경제학자지만, 나는 ‘불황이 이미 30년간
계속되었으므로 이제 새로운 장기호황이 올 차례’라는 식의 장기파동론은지지하지 않습니다. 실증적으로 볼 때도 장기불황이
1980년대말 끝났다는 어떤 증거도 없습니다.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의경제는 여전히 불황에 빠져 있고, 유럽대륙 특히
독일도 1990년대 내내 불황 속에 있었습니다. 미국은 최근 3년 동안 빠른성장을 보였지만, 의미있는 이윤율의 회복이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정성진 샤이크는 바로 그 이윤율이 1980년대 중반 이후 상승세로 반전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켈리니코스 글쎄요. 1990년대 미국의 생산성 성장은 여전히 완만하며, 최근의 호황은 월스트리트의 주가상승에 기인한 자산효과(wealth effect)여서, 즉 중산층의 소비지출이 자극한 것이어서, 그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성진
계경제의 전망과 관련하여 월러스틴(I. Wallerstein)의 세계체제론에 대한 선생의 생각을 알고 싶습니다. 월러스틴은얼마
전 『창작과비평』에 실린 대담(1999년 봄호)에서 현재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체제이행기에 처해 있는데, 미국 패권의 쇠퇴가계속될
것이며, 1997∼98년 동아시아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향후 10년 내 동아시아 특히 일본과 중국이 경제적으로 강력하게떠오를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아시아 금융위기 후 유행한 동아시아 경제성장모델 붕괴론과 미국 패권의 재확립론을 비판했습니다.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의 문제


켈리니코스
는 월러스틴의 작업을 존경하며, 그의 세계경제 개념은 특히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월러스틴의 접근을
‘신스미스주의적맑스주의'(Neo-Smithian Marxism)라고 규정한 브레너의 비판이 여전히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월러스틴은 자본주의의역사를 서술하면서 자본주의의 근본적 특징인 임금노동과 자본의 경쟁적 축적을 희석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세계경제개념을 기원전 3000년까지 소급한 프랭크(A.G. Frank)에 와서 더 강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데서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떤 중심에서 다른 중심으로의 패권이동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조적 특징과
문제점입니다. 중심과 주변의이동을 극단적으로 강조할 경우, 아리기(G. Arrighi)의 최근 저작 『장기 20세기』(The
Long TwentiethCentury)에서 보듯이, 자본주의의 중심이 베네찌아에서 제노바로, 다시 네덜란드로, 그 다음 영국,
미국으로 이동했으며 장차일본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일종의 역사철학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경기순환의 한
국면에서 발생한 현상을특권화해서는 안됩니다. 자본주의는 원래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체제인데, 그 경기순환은 세계체제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보다 더강력할 수 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1980년대에는 미국경제 쇠퇴론과 미국을 제치고 아시아가 세계경제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우려가 팽배했고, 최근에는 그 반대의 현상이 유행하는 것은 이같은 경기순환의 세계적 불균등성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미국경제에 대한 쇠퇴론이나 낙관론 모두 옳지 않습니다. 미국경제가 상대적으로 회복된 것은 사실이고, 이는
부분적으로는 성공적인경쟁적 구조조정, 마이크로쏘프트나 인텔 같은 경쟁적 산업의 출현에 힘입은 것이었지만, 주로 그 주요
경쟁국들이 지난 15년 전에비해 약화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아시아가 미국을 제치고 세계경제의 새로운 중심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단기적 시각의접근법입니다. 일본이나 중국이 미국을 대체하려면 현재의 심각한 구조적 위기와 불황을 타개해야 하는데, 이는
쉽지 않다고생각합니다. 또 그럴 경우 동아시아에 우려와 긴장이 조성될 것입니다. 세계경제 전망의 시간 단위가 문제입니다. 예컨대
다음50년, 100년 동안에는 어떤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50년, 100년이란 장기에서는 문제의
근원인자본주의 자체가 제거되기를 희망합니다.


정성진
선생은 유럽연합에 대해서도 많은 글을 썼습니다. 올해 초도입된 유로화(貨)는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일부 진보진영은
유럽연합이 신자유주의적인 영미식 자본주의 대신 그것보다는개혁적인 독일형 자본주의가 확산되고 또 유럽대륙 규모의 거대한
노동자계급이 형성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합니다.


유럽연합: 유럽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원인과 결과


켈리니코스
많은사람들은 유럽연합이 국민국가를 넘어 초국가적 협동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보지만, 유럽연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협력하면서도적대적인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유럽연합은 프랑스와 독일의 이해관계가 타협하여 나온
것입니다.프랑스가 유로화의 도입을 추진했던 것은 유로화가 마르크화를 비롯한 모든 유럽통화를 대체하고 독일 중앙은행
분데스방크(BundesBank)를 비롯한 모든 유럽 나라들의 중앙은행을 유럽중앙은행(ECB)으로 대체함으로써 독일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자신들의영향력을 증대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독일은 유럽연합이라는 틀을 이용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나찌즘 같은독일제국주의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지 않게 하는 방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럽연합의 성립과정은 자본가들의 갈등과
부분적 협력으로점철되어 있는 것이지요. 유럽연합은 유럽 노동자계급에게 어떠한 이득도 가져다주지 않을 것입니다. 즉 유로화를
도입한 나라들은공공지출을 삭감해야 하고 금리정책을 유럽중앙은행에 맡겨야 하는데, 이는 독일형 이해당사자
자본주의(stakeholdercapitalism)가 성취한 것들에 대한 체계적인 신자유주의적 공격 과정입니다. 1990년대
유럽경제가 불황에 빠진 주요한이유 중의 하나도 유로화를 도입하기 위해 요구된 조건들, 즉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입니다. 오히려
유럽 차원에서 노동자계급은유럽연합이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저항 과정에서, 다시 말해서 투쟁을 통해 아래로부터 형성될
것입니다. 최근 국경을넘어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노동자투쟁의 연대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얼마 전 프랑스와 벨기에 노동자투쟁의
연대는 매우 인상적인것이었습니다.


정성진
신자유주의는, 1997∼98년 세계경제위기의 폭발에 큰 책임이 있다는 데 사람들의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수세에 몰리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민중투쟁이 고양되고 유럽 각국에서 사회민주당이 재집권하는 것을신자유주의의 퇴조를 보여주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득세했던 국면에서는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되던 케인즈주의·국가주의가다시 각광을 받고, 이른바
‘국가수복'(reclaiming the state)이 진보진영의 ‘새로운 통념’으로 정착되고있습니다. 또한 윌 후톤(Will
Hutton)의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자본주의 이외의 대안부재’의 세계에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경쟁할 수 있는 21세기 진보진영의 대안으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선생은 이처럼1997∼98년 이후 세계 진보진영,
특히 한국의 진보진영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좌파 케인즈주의의 자본통제론, ‘이해당사자자본주의론’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본통제론,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론 비판


켈리니코스
실히 케인즈주의로 방향 선회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국제금융투기꾼 쏘로스(G. Soros)조차 금융시장이 비합리적이라고말합니다.
케인즈는 금융시장이 뇌동(herd), 공황, 행복증세 등이 지배하는 일종의 도박판으로서 투자를 조직하는 방식으로
매우비합리적인데, 이를 제대로 통제한다면 만사 오케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맑스는 금융시장의 비합리성을
자본주의적생산관계의 모순, 특히 이윤율의 저하 경향이라는 더 큰 맥락에서 고찰했습니다. 그리고 후톤은 1995년 출판된
『우리의국가』(The State We’re In)에서 독일과 일본을 이해당사자 자본주의의 두 사례로 들었지만, 알다시피 일본은
현재최악의 불황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독일에서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즉 조절되고 상대적으로 복지우호적인 자본주의는
대기업으로부터체계적인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론이 좌파 사이에 유행하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정성진 하지만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론이 최근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지난 아시아 경제위기와 세계대공황의 위험 사태에서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켈리니코스
자유주의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 않고, 그에 대한 반동으로 지난 수년 동안 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집권한 것은사실이지만,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 실제로 거부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 내부에서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지지 입장과반대 입장이
대립하고 있는데, 이는 최근 사회민주당이 집권한 독일의 경우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독일재무장관이었던
라퐁텐(Lafontaine)은 케인즈주의 경제정책을 강력하게 옹호했지만, 슈뢰더(Schr der) 총리는 그를해임하고 영국
블레어(Blair) 총리의 ‘제3의 길’, 즉 신자유주의를 지지했습니다. 프랑스 사회당의 조스뺑(Jospin)총리도 말로는
블레어의 ‘제3의 길’을 비판하지만, 실제로는 지난 우익정권들보다 훨씬 많은 민영화를 단행했습니다. 그리고블레어는 주지하듯이
신자유주의의 애호자입니다. 요컨대 최근 수년 동안 신자유주의에 대한 정치적 반동은 있었지만, 실제에서는신자유주의 정책이 거부되고
있지 않습니다. 케인즈주의적 자본통제 정책의 하나인 토빈세는 세계적 규모에서 금융투기에 대해과세하자는 것으로 아주 훌륭한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토빈세를 실제로 도입하려면 세계적 규모에서 자본의 활동을 제약하기 위한정치세력의 엄청난 동원, 다시 말해서
노동자계급 세력의 대규모 동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노동자계급 운동이 토빈세를 부과할 수있을 정도로 강력하다면, 아예 자본주의
자체도 제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성진
방금 블레어의 ‘제3의길’을 언급하셨는데,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도 영국의 토니 블레어와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 등이 주장하는’제3의 길’의 추종자로 자처하면서 이른바 ‘민주적 시장경제론’을 전개합니다. 또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든스의 『제3의길』(The Third Way)은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쎌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최근 논문에서
『제3의 길』은 기든스의 책중 ‘최악’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제3의 길’에 대한 선생의 비판의 이론적 핵심은 무엇입니까?


제3의 길: 신자유주의의 길


켈리니코스
뜻 보기에 ‘제3의 길’은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제3의 길’은 매력적이지 못한 두 가지 선택에 대한 대안으로제출되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기든스가 국가사회주의라고 부르는 스딸린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이고, 둘째는 신자유주의입니다. 그러나기든스와
블레어는 국가사회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동시에 거부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신자유주의를 수용하고 있습니다. 단지 좌익적수사학으로
분장했을 뿐이지요.


정성진 ‘제3의 길’은 본질적으로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라는 말씀인데, ‘제3의 길’이 세계화라는 새로운 조건에 적응한 신판 케인즈주의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켈리니코스
지만 블레어정부의 경제정책을 보십시오. 블레어정부의 브라운(G. Brown) 재무장관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영국
중앙은행을정부에서 독립시키고 독자적으로 금리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입니다. 또한 블레어정부는 영국의 공공지출을
지난1960년대 이래 가장 낮은 수준으로 삭감했으며, 가난한 사람과 실업자를 위한 복지지출 역시 대폭 삭감했습니다.
여기에케인즈주의적 요소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기든스는 신자유주의에 세계화 운운하는 이론적 외양을 덧씌웠을 뿐입니다. 그는
『제3의길』에서 세계화를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고 그저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경향이라고 묘사하고, 세계화 담론에 대해 그동안
제기된비판들을 무시합니다. 그가 그 책에서 토빈세를 지지하고 ‘유엔경제안전보장이사회’의 설치 등 케인즈주의적 정책들을 주창하는
것은사실이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기든스는 권력과 지배에 대한 연구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어떻게 토빈세를 국제금융자본에 실제로 부과할 수 있을지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둘째, 기든스의 담론은
이처럼취약하지만 블레어의 정책보다는 진보적이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제로는 블레어의 나팔수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예컨대기든스는 『제3의 길』에서 근대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적 없는 국가’라고 묘사하면서, 국가간 적대관계가 소멸할
것이라고전망합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은 지난 10년 동안 소련을 대신할 새로운 적을 계속 찾아왔습니다. 싸담 후쎄인과
밀로셰비치 등을’새로운 히틀러’라고 규탄해왔고, 최근에는 중국이 미국의 국가이익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담론을 새로 개발하고
있는데도 기든스처럼현대국가를 ‘적 없는 국가’ 운운하는 것은 정말 최악의 이데올로기적 말장난입니다.


정성진
한데 선생은이해당사자 자본주의, 케인즈주의, ‘제3의 길’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아까 언급한 세계경제위기를 다룬 논문에서
사회주의의’행동강령’에 국유화·토빈세 같은 좌파 케인즈주의자들의 정책대안을 대부분 포함시켰습니다. 이는 논리적으로 모순이
아닌가요?


좌파 케인즈주의정책을 가능하게 하는 것들


켈리니코스
쎄요. 우선 토빈세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토빈세 자체는 나쁜 생각이 아닙니다. 문제는 방금 전에 언급했듯이 토빈세를정치적으로
실제로 어떻게 도입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케인즈는 투자의 사회화를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그것의 실행은사회혁명 없이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오늘 케인즈주의자들도 여러가지 개량적 정책들을 주장하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길 정치적 의지,정치전략이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예컨대 라퐁텐이 금리인하, 부자들에 대한 중과세 등을 주장해서 독일 자본가들이 슈뢰더 총리에게압력을 가해
그를 해임하려 했을 때, 그는 독일 노동자들에게 “파업을 해서라도 내가 재무장관으로 계속 집무할 수 있도록도와달라”고 호소하지
않았습니다.


정성진 토빈세 같은 좌파 케인즈주의 정책은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실행될 수 없으며, 그 실행은 자본주의의 타도를 필요로 한다는 말씀인가요?


켈리니코스
파 케인즈주의 정책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들은 장기적으로 보면 물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없습니다.
또 단기적으로도 좌파 케인즈주의 정책은 자본주의적 수익성의 논리를 위협하지 않고서는 실행될 수 없습니다.


정성진
지만 스웨덴이나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의 경험은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그러한 정책을 도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보여주는
것이 아닌가요? 좌파 케인즈주의 정책은 단지 정책대안이 아니라 전후 황금시대 자본주의의 현실적 구성요소였다고 보아야하지
않을까요?


켈리니코스
글쎄요. 그 문제는 우리를 다시 영구군비경제의 문제로 되돌아가게 합니다.왜냐하면 스웨덴 자본주의가 상대적으로 발전된 복지국가를
용인할 수 있었던 까닭은 전후시기 자본주의의 호황이라는 조건, 즉영구군비경제에 근거한 높은 이윤율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케인즈주의적 자본주의 경제를 존립할 수 있게 했던 것은 유효수요관리정책이 아니라 영구군비경제 메커니즘이었습니다.


정성진 저도 전후 호황이 케인즈주의 경제정책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복지국가·자본통제 같은 케인즈주의 정책이 자본주의체제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지요.


켈리니코스
렇습니다. 영국에서도 1940년대말부터 1979년까지 일정한 자본통제가 시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케인즈주의 정책은
자본주의가국가자본주의 방식으로 조직되어 높은 정도로 국가의 경제통제가 이루어졌던 시기에는 일반적으로 실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통합된 자본주의는 케인즈주의 정책의 도입에 저항할 것입니다. 케인즈주의 정책의 도입을 위해 노동자계급의 동원이 필요한
것은 바로이 때문입니다. 물론 말레이시아 마하티르(Mahatir) 수상은 노동자계급의 동원 없이 자본통제를 도입했지만, 이는
말레이시아의특수한 조건을 반영한 것입니다.


정성진
현재 한국의 김대중정부는 노동시장의 유연화, 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및 재벌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진보진영은 노동시장의 유연화,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반대하면서도재벌개혁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재벌해체론의 허와 실


켈리니코스
벌해체를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작지만 더 효율적이고 더 경쟁력있는 기업의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의의미는
노동자 착취가 더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하는데, 왜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자에 대해 더 효율적 착취를 불러올재벌해체를
요구해야 합니까?


정성진 그러나 한국의 재벌해체론자들은 1997∼98년 한국의 IMF위기의 주된 책임을 재벌에 묻고, 재벌해체는 자본의 힘을 약화시키고 대중의 힘을 강화할 것이기 때문에, 진보적 의의를 갖는다고 주장합니다.


켈리니코스
도 재벌이 이른바 IMF위기에 주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재벌이 과잉투자를 하도록 돈을 대주고 위기가 발생하자일거에
돈을 빼나갔던 서방의 국제금융자본도 IMF위기에 책임이 있습니다. 주요한 문제는 자본주의가 한국의 역사에서 취했던 특정한제도적
형태, 즉 재벌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그 자체에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1차대전 이전 ‘스탠더드 석유트러스트’의해체,
20년전 ITT사의 해체 같은 반독점 조치들은 독점적 대기업 체제의 재편만을 낳았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기업 인수·합병은오늘
서구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대기업은 자본주의의 내재적 경향입니다. 오늘 재벌이 해체되어도, 내일 다른대기업이
생겨날 것입니다.


정성진 그렇긴 하지만 일부 재벌해체론자들은 재벌해체가 반독점 민주변혁에 기여한다고 주장합니다.


켈리니코스
독점 민주변혁론은 스딸린주의 2단계 혁명론의 일종으로, 한국의 진보진영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공산당들도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변혁의 첫 단계인 민주변혁 단계에서 추악하고 부패한 자본주의를 제거하고 좋은 자본주의, 진보적 자본주의를 세우자고 주장하는
것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반독점은 단지 독점의 재편으로 귀결될 것이며, 단기적으로도 외국자본의 지배와 국제적 경쟁의
증대를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재벌해체에 따른 독점가격 인하 등의 긍정적 효과는 기업파산으로 인한 실업자 증대 같은 부정적 효과에
의해상쇄될 것입니다. 물론 나는 재벌에 반대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에서 자본주의가 취하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지,
재벌이유별나게 사악한 자본가들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정성진
지금 반독점 민주변혁론, 즉 스딸린주의 2단계혁명론을 비판했는데, 하지만 선생은 자본주의가 예컨대 경쟁자본주의 단계에서
독점자본주의 단계, 국가자본주의 단계로 발전해왔다고보는 자본주의 발전단계론은 수용합니다. 선생의 자본주의 발전단계론은 스딸린주의
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론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켈리니코스
본주의 발전단계론은 스딸린주의 2단계 혁명론과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스딸린주의 독점자본주의 단계론은 거대 독점자본이
국가를지배하고 대중을 빈곤하게 한다는 주장인데, 이는 도구주의적 국가관에 근거한 것이며 2단계 혁명론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한다는
점에서잘못되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발전단계론은 자본주의 경제의 역사에 역사유물론을 적용한 것이며, 2단계 혁명론의
부정인영속혁명론은 자본주의 발전의 제국주의 단계에서는 민주주의적 요구와 사회주의적 요구가 융합된다는 정치이론입니다.


한국의 민주노동당 출범에 부쳐


정성진
계경제와 관련된 논의는 그 정도로 하고, 최근 한국 진보진영의 현안으로 떠오르는 진보정당 출범에 대한 논의로
넘어가지요.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성장한 민주노조운동의 정치세력화 노력은 IMF위기 이후 더 가속화되어
‘민주노동당'(가칭)의 출범을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혁명적 사회주의 노선을 취하고 있지는 않지만, 김대중정부의
신자유주의 노선을 거부하고강령상으로는 자본주의의 극복을 지향하며, 또 민주노총의 조직적 지원을 받는다는 점에서 이전의 진보정당의
실험과는 구별되는 것으로보입니다. ‘민주노동당’ 출현의 의미와 전망 및 한계는 무엇인지, ‘브라질 노동자당'(PT)과
‘남아프리카 공산당’ 및 최근’스코틀랜드 사회주의당'(SSP)의 경험을 고려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켈리니코스
우선 노동자들이경제적으로 노동조합의 기초 위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적 기초 위에서 자신들을 조직한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의정치적 독립을 지지합니다. 미국처럼 노동자들이 민주당 아니면 공화당 같은 부르주아 정당밖에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은 불행합니다.아직 대중적 노동자당이 존재하지 않는 한국에서 노동자당이 건설되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을 향한
진전이라는 점에서 분명히일보전진입니다. 그러나 노동자당이 건설된다고 해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이 확보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국 노동당의 경험에서보듯이 노동조합에 기초한 정당에서는 노동조합관료(trade union bureaucracy)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노동조합관료란 노동조합에 기초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자본과 노동의 중재자로서 그 타협을 추구하는 독자적
사회층으로, 서구사회민주당의 역사에서 보듯이 이들은 노동자투쟁의 결정적 국면에서 항상 보수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브라질
노동자당이나남아프리카 공산당은 권위주의적 조건을 뚫고 발전한 전투적이고 민주적인 대중적 노동조합운동이 급속히 출현한 결과
건설된대중정당으로서, 이는 정말 환영할 만한 것입니다. 그러나 남아프리카의 경우 흥미로운 것은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서
개량주의관료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출현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1980년대 대중적 노동조합인
남아프리카노동조합(COSATU)에서나타났으며, 1994년 5월 집권한 남아프리카민족회의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채택하게 된 것도
바로 이 개량주의적 노동조합관료때문이었습니다. 매우 전투적이고 사회주의 정치를 지지했던 노동운동이 노동자를 해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를 지지하게된 셈이지요. 노동조합관료의 영향을 반영하는 남아프리카 공산당은 노동자들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용하도록 설득하는 데 결정적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사회주의자들에게 진정한 노동자당의 출현은 좋은 일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문제들을발생시킨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스코틀랜드 사회주의당은 글래스고우에서 토미 셰리단(Tommy
Sheridan)을 스코틀랜드의회의원으로 당선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들은 스코틀랜드 노동자들의 개량주의와 민족주의에 지지를
호소했는데, 이것이 성공할 수있었던 것은 블레어가 개혁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쉐리단의 당선은 경사스런 일로,
사회주의노동자당도 그를 지지하고 그가선출된 것을 환영했지만, 이것은 매우 제한된, 즉 한 도시에 국한된 현상입니다. 스코틀랜드
사회주의당은 소규모 전투적인 극좌파조직이기 때문에, 브라질 노동자당이나 아프리카민족회의와 같은 차원에서 논의할 수는 없습니다.


정성진『창
작과비평』은 민족문제와 통일문제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지닌 잡지입니다. 내년은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는 해이지만한반도에서는
한국전쟁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선생의 국제사회주의 경향이 정통 뜨로쯔끼주의’제4인터내셔널’로부터 분리하게 된
계기는 1950년 한국전쟁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즉 제4인터내셔널은 북한체제를 관료적으로타락했지만 이승만의 남한보다는 진보적인
노동자국가로 보고 한국전쟁을 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으로 규정하여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적지지를 선언한 반면, 북한을 남한과 동일하게
반동적인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체제로 규정한 국제사회주의자들은 한국전쟁을 미·소 양대제국주의의 대리전쟁으로 규정하여 혁명적
패배주의(revolutionary defeatism)를 주장했습니다. 한국전쟁과 오늘북한 사회체제의 성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국주의전쟁으로서의 한국전쟁과 한반도의 미래


켈리니코스
국전쟁은 한국인민에게 엄청난 비극이었으며 서구열강은 그 엄청난 파괴와 고통에 주된 책임이 있습니다. 그 비극의 원인은
한반도가2차대전 종전 직후 양대 제국주의에 의해 분할 점령된 지역의 하나라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미제국주의와
소련제국주의의경합이 구체화되면서 이들은 한반도에서 대규모 군사적 충돌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한국전쟁은 본질적으로
제국주의전쟁이었으며, 북한체제는 동유럽체제와 마찬가지로 스딸린주의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은 어느
쪽이승리한다 할지라도 얻을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세계는 1950년에 비해 아주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현시점에서
미국과북한 사이에 군사적 충돌이 발생한다면 상황은 매우 다를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바로 그
새로운상황에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난 한국전쟁 당시 우리가 취했던 입장이,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를 전쟁에
대한우리의 입장을 결정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성진 21세기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보십니까?


켈리니코스
쎄요. 그것은 북한의 행동에 크게 달려 있기 때문에 무엇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아까 이야기했듯이 미국은 적국을
인위적으로만들어내고 그 국가와 군사적으로 충돌함으로써 다른 자본주의 열강들에게 자신이 패권자임을 과시하려는 전략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감안해야 합니다. 예컨대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로부터 일본을 보호해주는 것은 자국의 군사력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렇기때문에 나는 단지 추상적 가능성일 뿐이지만, 미국이 북한과 군사적 대결을 벌이는 것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합치된다고
판단하는상황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성진 이제 21세기 자본주의의 전망과 맑스주의의 과제에 대한 선생의 생각을 듣는 것으로 이 대담을 마칠까 합니다.


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


켈리니코스
간이 많이 경과되었으므로, 짧게 이야기하겠습니다. 폴란드의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는 1차대전
당시인류가 ‘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 하는 선택에 직면했다고 말했는데, 이는 오늘도 타당한 통찰입니다. 세계적 규모의
환경파괴와심화되는 불평등 문제를 보십시오. 또 오늘날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아프리카를 황폐화하고 있는 전쟁, 그리고
항존하는더 파괴적인 전쟁의 가능성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렇다면 야만이란 것이 오늘의 세계에서 현실적인 가능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것입니다. 또다른 위대한 맑스주의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사회주의혁명이란 통제할 수 없이
질주하는기차에서 비상브레이크를 잡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통제할 수 없는 기차란 바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이며,
우리는그 자본주의의 파괴적 행동을 중단시킬 수 있는 비상브레이크로서 사회주의혁명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사회주의혁명은 단지
추상적요구가 아니며, 이의 성공을 위해서는 맑스주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효과적으로 조직하여 사회주의를 실천해나가야
합니다.만약 우리가 야만을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회주의를 위해 적극적으로 투쟁해야 합니다.


정성진 장시간 감사합니다. 오늘 선생의 이야기는 21세기를 맞이하는 한국의 독자들이 새로운 진보의 희망을 갖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집자주: 이 대담은 대표적 뜨로쯔끼주의자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소 초청으로 9월12∼20일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정성진 교수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뜨로쯔끼주의는 1940년 스딸린의 지령에 의해멕시코에서 살해된 러시아혁명의 지도자 레온
뜨로쯔끼(Leon Trotsky)의 사상을 지지하는 맑스주의를 말한다. 뜨로쯔끼주의는러시아 같은 후진국에서 사회주의혁명은
민주주의혁명 완수 이후가 아니라 민주주의혁명에 연속하여 수행되어야 한다는 ‘영구혁명론’과한 나라에서 수립된 노동자권력이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혁명의 세계적 확산이 필요하다는 ‘세계혁명론’을 주장한다는 점에서,2단계혁명론 및 일국사회주의론을 주장하는
스딸린주의와 대립된다. 뜨로쯔끼주의는 1930년대 이후 소련에서 교조화한 스딸린주의를맑스·레닌주의의 왜곡이라고 비판하는 가운데,
현시기 국제사회주의운동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편집자

Alex Callinicos
오늘날 자본주의는 통제할 수 없이 질주하는 기차입니다. 자본주의의 파괴적 행동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맑스주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효과적으로 조직하여 사회주의를 실천해나가야 합니다.
1950
년 짐바브웨 출생. 영국으로 이주하여 옥스포드대에서 박사학위 받음. 현재 요크대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중앙위원으로 활동. 주요 저서로 『맑스의 혁명적 사상』 『포스트모더니즘 비판』 『뜨로즈끼주의』 『사회이론』 등이
있음.

丁聲鎭
세계경제위기에 큰 책임이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신자유주의는 수세에 몰리고 있습니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민중투쟁이 고양되고 유럽에서 사회민주당이 득세하는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경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주요 논문으로 「세계경제위기와 맑스주의 공황론」 「1848년 ‘공산주의당 선언’의 현재성」 「뜨로쯔끼의 생애와 사상」, 저서로 『한국경제에서의 마르크스비율의 분석』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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