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가디언의 지젝 인터뷰 왜곡보도

 

간만에 동아일보를 읽다가 재미있는 기사를 하나 발견했다. 슬라보예 지젝의 인터뷰 기사를 그대로 옮긴 기사였다. 철학(특히 현대 철학)에 있어서는 워낙 문외한이지만, 최근에 친해진 한 친구녀석이 지젝의 광팬이라 그의 엽기성과 대중성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읽어보니 역시 재기발랄한 답변이었다. 그리고 동아일보에서 가디언의 기사를 실은 것도 꽤 신선했다.

그런데 또 다른 친구녀석이 가디언의 원문 사이트를 기웃거리다가 웃기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이 인터뷰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답변을 빼놓고 옮긴 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의도성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 마지막 답변이 뭔지 읽어보면 다들 인정 하실 듯.

우선 아래는 동아일보에 실린 원문이다.

 

‘괴물 철학자’ 지제크의 ‘일상에 대한 독설적 답변’ 화제

“정작 행복이 닥치면 행복하지 않았다
인생의 가장 큰 교훈은 ‘인생은 무의미’”

‘금세기 최고의 철학자’ ‘괴물 같은 철학자’ ‘철학계의 최고 유행’.

200808180094세계 철학계에서 주목받는 학자 중 한 사람인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제크(59·사진)에게 붙는 수식어다.

독일 관념론과 정신분석, 마르크스주의를 통합한 사상을 토대로 철학 사회학 심리학 등 여러 분야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게 지제크 사유의 특징.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에 대한 비평과 현실 정치 참여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2000년대 들어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죽은 신을 위하여’ ‘지젝이 만난 레닌’ 등 최근까지 그의 저서 30여 권이 번역 출간되면서 ‘지제크 신드롬’이 이어지고 있다.

학문 간 경계를 넘나들며 ‘독설’ ‘난해함’을 특징으로 하는 지제크가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일상 등에 대한 질문에 명쾌한 답변을 내놨다.

―언제 가장 행복했나.
“행복한 순간을 찾을 때 몇 번 행복을 느꼈지만 행복이 정작 닥치면 행복하지 않았다.”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죽은 뒤에 다시 정신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죽은 뒤) 곧바로 화장되기를 원한다.”

―가장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
“어머니가 벌거벗고 있는 모습. 정말 싫었다.”

―생존 인물 가운데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유는….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전 아이티 대통령이다. 그는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 인물이다.”

―당신의 특성 가운데 가장 유감스러운 것은….
“다른 사람의 곤궁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점.”

―가장 당황스러웠던 순간은….
“사랑을 나누기 전 여성 앞에 나체로 서 있었던 일이다.”

―당신이 산 물건 가운데 가장 비싼 것은 무엇인가.
“독일에서 새롭게 나온 헤겔 전집이다.”

―가장 소중한 물건은….
“바로 앞의 대답을 보라.”

―무엇이 당신을 우울하게 만드나.
“어리석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을 보는 일.”

―사랑이란 무엇인가.
“커다란 불운이고, 괴물 같은 기생충이며, 작은 기쁨들을 모두 파괴하는 위급 상황의 영원한 지속이다.”

―당신이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대상은….
“철학.”

―좋아하는 냄새는….
“썩은 나무처럼 점점 부패해 가는 자연의 냄새.”

―가장 경멸하는 사람들은 어떤 이들인가.
“고문하는 사람들을 돕는 의사들.”

―당신이 해본 일 가운데 최악의 일은 무엇인가.
“가르치는 일. 나는 학생들을 싫어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어리석고 따분하다.”

―당신의 과거를 편집할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고 싶나.
“태어난 사실. 나는 ‘가장 큰 행운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한 소포클레스의 말에 동의한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디로 가고 싶나.
“19세기 초 독일로 가서 헤겔의 강의를 듣고 싶다.”

―인생이 당신에게 가르쳐준 가장 큰 교훈은 무엇인가.
“‘인생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못하는 의미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준 것이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일단 동아일보에 실린 건 여기 까지다.

가디언에는 뭐라고 실려 있을까?

 

Slavoj Zizek, 59, was born in Ljubljana, Slovenia. He is a professor at the European Graduate School, international director of the Birkbeck Institute for Humanities in London and a senior researcher at the University of Ljubljana’s institute of sociology. He has written more than 30 books on subjects as diverse as Hitchcock, Lenin and 9/11, and also presented the TV series The Pervert’s Guide To Cinema.

When were you happiest?

A few times when I looked forward to a happy moment or remembered it – never when it was happening.

What is your greatest fear?

To awaken after death – that’s why I want to be burned immediately.

What is your earliest memory?

My mother naked. Disgusting.

Which living person do you most admire, and why?

Jean-Bertrand Aristide, the twice-deposed president of Haiti. He is a model of what can be done for the people even in a desperate situation.

What is the trait you most deplore in yourself?

Indifference to the plights of others.

What is the trait you most deplore in others?

Their sleazy readiness to offer me help when I don’t need or want it.

What was your most embarrassing moment?

Standing naked in front of a woman before making love.

Aside from a property, what’s the most expensive thing you’ve bought?

The new German edition of the collected works of Hegel.

What is your most treasured possession?

See the previous answer.

What makes you depressed?

Seeing stupid people happy.

What do you most dislike about your appearance?

That it makes me appear the way I really am.

What is your most unappealing habit?

The ridiculously excessive tics of my hands while I talk.

What would be your fancy dress costume of choice?

A mask of myself on my face, so people would think I am not myself but someone pretending to be me.

What is your guiltiest pleasure?

Watching embarrassingly pathetic movies such as The Sound Of Music.

What do you owe your parents?

Nothing, I hope. I didn’t spend a minute bemoaning their death.

To whom would you most like to say sorry, and why?

To my sons, for not being a good enough father.

What does love feel like?

Like a great misfortune, a monstrous parasite, a permanent state of emergency that ruins all small pleasures.

What or who is the love of your life?

Philosophy. I secretly think reality exists so we can speculate about it.

What is your favourite smell?

Nature in decay, like rotten trees.

Have you ever said ‘I love you’ and not meant it?

All the time. When I really love someone, I can only show it by making aggressive and bad-taste remarks.

Which living person do you most despise, and why?

Medical doctors who assist torturers.

What is the worst job you’ve done?

Teaching. I hate students, they are (as all people) mostly stupid and boring.

What has been your biggest disappointment?

What Alain Badiou calls the ‘obscure disaster’ of the 20th century: the catastrophic failure of communism.

If you could edit your past, what would you change?

My birth. I agree with Sophocles: the greatest luck is not to have been born – but, as the joke goes on, very few people succeed in it.

If you could go back in time, where would you go?

To Germany in the early 19th century, to follow a university course by Hegel.

How do you relax?

Listening again and again to Wagner.

How often do you have sex?

It depends what one means by sex. If it’s the usual masturbation with a living partner, I try not to have it at all.

What is the closest you’ve come to death?

When I had a mild heart attack. I started to hate my body: it refused to do its duty to serve me blindly.

What single thing would improve the quality of your life?

To avoid senility.

What do you consider your greatest achievement?

The chapters where I develop what I think is a good interpretation of Hegel.

What is the most important lesson life has taught you?

That life is a stupid, meaningless thing that has nothing to teach you.

Tell us a secret.

Communism will win.

 

마지막 밑줄 친 부분은 동아일보에는 나와있지 않은 부분이다.

"공산주의는 승리할 것이다." 

동아일보 입장에서는 아마 후덜덜덜 했을 거다. 사회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라니!!!

어쨌든 이정도면 왜곡보도 아닌가? 악의적 수준인 듯 하다. ‘슬라보예 지젝’의 인터뷰를, ‘가디언’에서 ‘긁어’다가 ‘악의’적으로 ‘왜곡’해서 자기들 지면에 실어놓다니. 차라리 조선처럼 까놓고 ‘나는 꼴통 우파요 난 내가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라고 내세우면 찌질하다는 소리는 안 듣는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스리슬쩍 마지막 결정적인 부분만 빼놓는 아주 얍삽한 방법을 쓰니까 동아가 찌질하다는 소리를 듣는 거다.

하여간, 답이 안나오는 놈들이다.

동아일보. 너네는 그냥 불쌍할 뿐이다.

“동아…가디언의 지젝 인터뷰 왜곡보도”에 대한 7개의 댓글

  1. 재밌게 글 잘 읽었습니다.
    지젝에 대해서 궁금해지는군요
    사랑이란 무엇인가; 질문에 대한 대답..
    명쾌하면서 페부를 찌르는 코멘트네요^^;;

    ..조중동이 찌질하다고?는 하지만 한편으론
    두려워 지는게 기사를 쓰고 편집을 하고있는 작자들이
    소위 대한민국 최고학부라고 자랑하는 “sky”출신들이라
    는점 입니다 ..그들은 “알고 있으면서”도 작정을 하고 진실을 외면하고 왜곡한다는 것이지요.더 중요한건 친미,친일 사대주의자들로 꽁꽁 뭉쳐있다는것..기우일지 몰라도 만약 전쟁이라도 난다면….참으로 무서운 사람들 입니다…

    보잘것 없는 제 포스트(트래비스)에 트랙백 해주신것 고맙고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2. 지젝에 대해 아는게 없으니 닥치고 그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코멘트니 감상을 말하는 게 정도 이겠지만, 난 승리라는 말의 명쾌함과 단순함을 싫어하기에 본능적으로 글을 써본다.
    그토록 사랑이 안느껴지는 말은 없는 것 같다. 몇일 전까지 내가 올림픽이라는 경합의 세계,승부의 세계에 열광하고 일희일비했지만,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 세계’라는 인식으로 마무리 해주는 센스를 선호했기에 올림픽을 재미있게 보았다. 사실 박태환와 승리와 마이클 존선의 퇴각의 순간이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기억한다.
    승리가 순간적이라면 승리는 승리가 아니다. 말하자면 삼세판에서 한판만 이긴 불투명한 승리이다. 물론 내가 일상 생활 속에서도 승부욕을 가지지 않고, 모든 것을 저주는 천사와 같은 존재가 아니지만, 적어도 나름의 체계만을 가지는 사상, -ism간에는 승리가 더더욱없을 듯하다.
    다만 사실에 대한 진솔한 자세없이 있던 것을 없던 것으로 만들어버린 행태는 결코 ‘영원한 승리’의 조건에 포함될 여지도 없다.

    1. 폭력적인 댓글이군요….

      1. 쓸데없는 댓글 아닌 것 같습니다.. 서주신씨가 지젝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더라도 ‘승리’라는 단어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 같고,또 본인의 생각을 진지하게 썼다고 생각합니다. 주신씨의 진지한 생각이 담겨있는 댓글인데 지젝에 대해 모른다는 이유로 너무 매도하시는 것 같네요.

      2. 서주신씨는 재일교포 2세입니다. 일본어가 한국어보다 편한 분이죠. 한국어로 댓글을 쓰는 과정에서 당연히 유창하지 못할 수 밖에요. 물론 방문객님은 이 사실을 모르셨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폭력적인 댓글은 이해할 수 없네요…

  3. 현학적 사고에 푹 빠진 나머지 “관념론을 더 해라” 같은 황당한 권고를 고등학교 선생마냥 하는 사람, 꼭 있죠.
    지젝지젝 앵무새들 중에 특히 그런사람이 많구요.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남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거까진 좋은데 자길 좌파랍시고 내세우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말 못봐주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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