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에 닿고 싶다”

`이끼’, `야후’의 작가 윤태호가 쓴 글.

명문이다.

 

차원에 닿고싶다.

슬램덩크란 만화가 있다. 일본 만화가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만든 농구만화다. 우리나라 잡지에도 연재되어 널리 읽힌 만화고 나 역시 지금도 수시로 꺼내보는 만화중의 하나다. 총 31권 중(최근 완전판이란 이름으로 24권 편집본이 새로 출간되었다) 앞부분은 전통적인 일본상업만화의 어법이 고스란히 적용되었지만 초중반을 넘어서며 농수선수 출신 작가의 섬세하고 리얼한 심리묘사와 상황전개가 돋보이며 자신만의 고유함을 녹아내기 시작했다.

이만화의 모든 것을 사랑하지만 그중에서 계속 반복해서 읽는 장면이 있다. 전설로 불리는 지역 최강자 상암고등학교와 몇 분 안남은 격전을 치루는 북산고. 전설에 걸맞는 훌륭한 조연을 기대했던 관중들에게 오히려 응원을 받던 최고조의 긴장된 그 순간. 모두가 주연 5명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던 그 순간. 이정도로 성장한 자신의 팀에 감격한 주장 채치수의 회상이 등장한다. 신입농구부원이던 그 때, 전국대회 우승을 꿈꾸며 혹독한 트레이닝을 주도하지만 훈련을 못견딘 부원들은 그의 꿈을 환상이라 말하며 하나 둘 팀을 떠난다. 좌절감을 안고 돌아온 늦은 저녁의 농구코트에 누군가의 공소리가 들린다. 문을 연 그곳엔 훗날 안경선배라 불리는 약골 권준호가 홀로 책상을 세워두고 슛 연습을 하고 있었다. “치수야, 리바운드 해줘, 이 책상은 도무지 패스할 줄을 몰라”. 농구부 최약골이 채치수와 꿈을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짧은 그 회상씬은 나에게 상처를 안겼었다. 슬램덩크를 읽으며 부러움에 목이 탄 순간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지만 담담하고 사사로운 이 회상씬이 목을 매게 할 줄이야. 안경선배로 인해 채치수는 욕망의 사이즈에 훈훈함을 더한 좀 더 풍부한 인간이 되었고 만화의 전편에 걸쳐 안경선배의 상식적 행동들은 좌충우돌 캐릭터가 판치는 만화에 질서를 부여하고 독자를 배려하는 작가의 시선이 되었다. 작가는 스스로 창조한 캐릭터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작가는 만화의 절정에 채치수의 회상을 빌어 안경선배, 권준호를 위한 페이지를 할애한 것이다.

20년 넘게 만화를 하다보니 독자를 들었다 놓는 기만적 기술을 몇 개인가 갖고있다. 울리거나 웃기거나, 정도와 수준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슬램덩크에서 작가가 구현한 세상은 닮을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캐릭터에 대한 배려, 불완전해서 더욱 아름다운 어느 한 시절을 바라보는 연민, 꿈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에 대한 격려와 낙오된 사람들에 대한 위로와 치유의 시선. 내게 없다는것이 아니라 닿을 수 없는 ‘지점’이란게 더욱 상처로 남았었다. (그가 나보다 두 살 연상이란 것에 위로하기도 했다.)

일본 바둑의 거성 조치훈은 이런 말을 했다. “어차피 바둑, 그래도 바둑”. 바둑 한 판으로 세상이 어찌되겠냐마는 그래도 자신에게 전부는 바둑이고 증명하고 싶은 세계란 뜻일게다. 나 역시 마찬가지. 세상에 만화가 없어진다한들 타인들에게 그 무슨 상관일까마는 나에게는 “그래도 만화”인 것이다. “그래도 만화”라면 내가 까치발을 해서라도 닿을 수 있는 끝을 닿아보고싶다. 그 차원에 닿고 싶다. 그것이 나에게 최고의 인생, 최고의 가치다. 상처가 완전 치유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목격할 수 있는 작품으로 차원을 보여준 이노우에 다케히코와 함께 살고 있는 현재에 감사한다.

(윤태호. 럭셔리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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