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의 신화

8936412051_1천재 작곡가 지박

‘지박’이라는 천재 음악가를 아는가? 이상한 이름이지만, 한국인이다(본명은 박지웅이다. 지박은 예명이다).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청년 음악간데, 이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23세에 할리우드 영화음악 유망주에게 주는 제리 골드스미스 상을 세계 최연소로 받았다. 동양인 최초이기도 했다. 2001년, 2002년에는 미국음악가협회(ASCAP)가 주최하는 영화음악 작곡대회에서 2년 연속 수상했다. 김기덕 감독은 지박의 음악을 듣자 마자 ‘천재’라고 극찬했다. 지박은 올 2월 열린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의 음악감독을 맡기도 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천재다.

한때 뮤지션을 꿈꿨던 사람으로써, 이 사람을 보고 있으면 정말 부럽다. 그가 참여한 영화를 보면 범인인 나도 그가 천재라는 사실을 쉽사리 인정하게 만든다. 그의 재능이 오래도록 계속되어 나의 귀를 즐겁게 해달라고 속으로 기도한 적도 있다. 그런데 부러움과 고마움 뒤에 또 다른 감정이 또아리를 튼다. 질투가 그것이다. 나는 나름대로 치열하게 뮤지션을 걷고자 노력했지만, 결국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뒤늦게 학교로 돌아와 취업을 위해 학점 수집에 매진 중이다. 그러나 그는 이른 나이에 뮤지션으로서 거의 정점에 다가서고 있다. 그와 나 사이의 벽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신의 뜻이라 생각했다. 신께서 지박을 그렇게 정성들여 빚으셨고, 나는 이 모양으로 빚으셨다. 그는 어떻게든 뮤지션으로 성공할 운명이었고, 나는 뭘 해도 안 될 운명이었다. 꿈을 접은 뒤로, 지박을 볼 때마다, 흘러간 수 많은 천재적 뮤지션들의 작품을 감상할 때 마다, 그냥 그렇게 생각해 버렸다. 그들과 나는 다르다고.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는 정말 ‘내가 생각하는’ 천재였을까? 더 노력했다면, 그처럼 될 수 있었을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그리고 이제 그만 얌전히 살려 했던 나의 결심도, 어느 새 조금씩 흔들리는 게 느껴진다. 이 책, 무서운 책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홍성욱, 이성욱 외 저, <뉴턴과 아인슈타인, 우리가 몰랐던 천재들의 창조성> 말이다.

 

천재의 신화

우리는 흔히 천재를 별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 괴팍한 구석이 있고, 일반인들과는 쉽게 소통하지 못하며, 가끔 엉뚱할 정도로 사소한 것에 집착하여 사람들을 황당하게 만들기도 하는 사람들. 이게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일상적 차원에서의 천재들의 모습이다. 괴팍한 그들이지만, 우리는 그들을 절대 무시하지 못한다. 그들은 일상에 매몰되어 사회의 한 기능을 기계적으로 담당하는 우리들과는 다르게, 범인은 이해할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하여 순간의 영감을 통해 엄청난 업적을 이루어 낸다. 그리고 그들의 업적은, 그것이 예술이든 과학이든, 우리를 더 나은 세계로 안내하곤 한다. 한편으로 이런 천재들이 부럽지만, 노력한다고 천재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능력은 신이 내려주신 거니까. 일반적으로, 범인이 노력해봐야 성공할 수는 있지만, 천재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이 가능하다. 첫째, 천재적 능력이라는 게 신이 만들어 주는 것, 즉 우연의 산물이라면, 그 우연은 왜 백인 남성들만을 우대하는 것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천재들을 떠올려 보자. 마이클 조던과 서태지를 제외하고는 아마 거의 모두가 백인 남성일 것이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들을 향해서만 미소 지을 리 없다. 신의 사랑은 공평해야 하는 거니까. 그렇다면, 천재는 그저 우연의 산물만은 아닐 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가능하다. 천재란 사회의 산물이고, 구미의 사회가 천재를 낳기에 더 유리한 사회였던 게 아닐까?

이 책에 소개된 토마스 쿤의 이론에 따르면 이러한 의심은 확신으로 바뀐다. 그는 과학 활동이 ‘발산적 사고’와 ‘수렴적 사고’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본다. 수렴적 사고란 기존의 과학적 세계관에 따라 현상을 설명하려는 태도를 일컫는다. 발산적 사고는 기존의 과학적 세계관에 따르지 않고 대안적인 새로운 체계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생각할 때 천재의 ‘영감’은 이 발산적 사고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발산적 사고는 수렴적 사고가 전제되어야 가능한 방법론이다. 이 책에서 주로 다룬 뉴튼과 아인슈타인이라는 두 ‘천재’들도 기존의 과학체계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한 다음에 새로운 과학적 세계관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새로운 현상이 기존의 과학적 세계관을 위협할 때, 이것이 기존의 과학적 세계관을 통해 노력하면 풀릴 수 있는 문제인지, 그것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인지 알아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다. 여기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기존의 과학적 세계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당연히 전제되어야 한다.

그 동안 정립되어 온 세계관에 바탕하지 않고서는, 비록 그 세계관이 불완전하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세계관을 정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대 과학은 물론이고, 수많은 근대적 경험들을 쌓아 온 구미의 국가들이 그렇지 못한 다른 지역의 국가들에 비해 천재를 낳을 확률은 더 높을 수 밖에 없다. 수렴적 사고를 할 정보의 소스가 훨씬 많을 테니 말이다.

또, 단순히 정보의 양적인 문제뿐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도 작용한다. 책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전까지 그가 경시했던 수학을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결국 그는 일류 수학자들과의 협동을 통해 위대한 업적을 완성하게 된다. 만약, 당시 유럽 과학계에서 합동 연구의 문화가 익숙지 못한 것이었고, 터부시되는 것이었다면, 수학자들의 아이디어를 얻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결국 천재의 업적은 순전히 개인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천재는 사회의 산물이며, 사회가 제공하는 자양분 위에서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여기서 두 번째 질문. 천재가 ‘깨달음’을 얻는 과정은 정말 순간적인 영감에 의존하는가? 천재가 사회의 산물이라고 하더라도, 만들어진 이후의 천재는 어떻게 그의 업적을 이루어내는지 궁금해진다. 그들이 정말 순간적 번뜩임에 의해 업적을 완성하는 것이라면, 그들은 여전히 신적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뉴턴과 아인슈타인이라는 과학계의 대표적인 두 천재를 통해 그들의 업적도 계속된 노력과 시행착오 끝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뉴턴의 사과나무 이야기는 뉴턴의 천재성을 설명하는 데 자주 언급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그것은 허구다. 그는 후크의 제안을 통해 만유인력에 대한 착상을 얻었으며, 이 착상을 이론으로 정립해 나가는 과정에서도 연금술과 같은 신비주의적 연구 경험이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번뜩이는 영감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아이디어를 이용해서 만유인력 개념을 ‘완성시켜 나간’ 것이다.

아인슈타인 역시 마찬가지다. 문제점을 인식함과 동시에 문제의 해결책을 깨달은 특수상대성이론의 완성 과정에서도, 특허청에서의 지난한 경험이 큰 역할을 했으며, 일반상대성이론 완성 과정에서는 오류투성이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렇듯, 이 책이 밝히고 있는 두 ‘천재’들의 성공 과정은 급격한 것이 아니라, 점진적인 것에 가깝다.

그렇다고 저자들이 이들이 천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천재성을 인정하되, 그들의 어떤 점을 천재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세세히 분석한다. 그들의 천재성을 신의 은총이 아닌, 인간적 노력의 결과물로 인식하는 것이다. 뉴턴의 경우 기존 지식의 심오한 이해와 다양한 지식에 질서를 부여하는 능력, 그리고 특유의 끈기와 열정(뉴턴은 자신의 연구 자료와 잡다한 편지들까지 세세히 정리해 남겨두었다고 한다. 뉴턴을 신격화하는 사람들은 이를 ‘천재의 괴팍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인식할 테지만, 내 생각에 이것은 오히려 그의 인간으로서의 열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느껴진다. 아니, 이 정도면 열정이 아니라 ‘헌신’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이 그의 천재성의 내용이다. 아인슈타인의 경우, ‘성공’과 ‘성공의 목적’을 구분할 줄 알았고, 이것이 일반상대성이론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단계적인 성과들을 절대 놓치지 않고 정리했으며, 뚜렷한 동기를 가지고 학습했다.

이것들이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지닌 천재성의 내용이다. 어째 요즘 유행하는 ‘성공하는 10 가지 습관’ 같은 자기개발서의 내용과 유사하지 않은가? 저자들은 두 천재를 우리가 쉽사리 범접할 수 있는 ‘인간계’의 영역으로 끌어내리고, 그들의 능력을 면밀히 분석한 후 우리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던진다. 과학적 창조성은 ‘이해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우리가 그간 알고 있었던 천재란 이해할 수 없는 신적 존재라는 관념은 신화에 불과한 것이다.

 

천재의 필요조건

저자들도 인정하는 듯 하지만, 인간의 선천적 능력은 저마다 다르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것이 과학이든 예술이든, 저마다 다른 창조성을 지니고 태어난다. 하지만 그것은 노력에 의해 어느 정도 발전시킬 수 있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그들의 연구를 위해 쏟은 노력을 생각해 보라. 그들의 업적이 진정 선천적 창조성 때문인지, 끈질긴 노력 때문인지 헷갈릴 정도다. 어쩌면, 누군가가 천재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그 사람이 가진 모든 열정을 쏟아 붇고 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천재에 대한 떠도는 얘기들을 되새겨 보자. 노력하지 않은 천재가 과연 얼마나 있던가? 간혹 정말 쉽게 쉽게 무언가를 해내는 천재들의 이야기들도 있지만, 그것들이 오히려 이야기 만들기 좋아하는 대중들에 의해 각색된 결과물인 지도 모른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쏟아 부은 노력과 시행착오들을 이 책을 통해 접하고 나니, 노력은 천재의 필요조건이라 보아도 무방할 듯 하다.

 

마치며…

다시 내 얘기로 돌아와 보면,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무서웠다. 다시 한번 노력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말이다. 내가 진정 내 꿈을 위해 노력했던가? 흔히 ‘열심히 무언가를 한다’는 표현을 쓰는데, ‘열심’이라는 단어를 풀이해 보면, 말 그대로 심장에서 열이 난다는 소리다. 꿈을 좇으면서, 내 심장에서 열이 나는 것을 과연 느껴 보았나? ‘그렇다’ 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다시 손에 악기를 잡을 용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찌해야 하나. 갈피가 잡히질 않는다. 마지막으로, 한 일간지에 실린 지박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끝을 맺으려 한다.

―어쨌든 천재라는 거네요?

"저는 노력으로 이렇게 된 거예요."

의외의 답변에 소리 내 웃었더니 그도 멋쩍은 듯 따라 웃었다. 그러더니 다시 큰 소리를 쳤다.

"저만큼 노력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세요. 학교 다닐 때부터 세 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어요. 보통 엔니오 모리코네 같은 영화음악의 대가들은 나이 들어 성공했잖아요? 저는 그 나이 될 때까지 못 기다릴 것 같아서 먹고 자는 시간만 빼면 계속 음악 듣고 분석했어요."

"제가 이렇게 말하니까 폼도 안 나고 싱겁죠? 어렸을 때는 악상이 빨리 안 떠올라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안 써져서 괴롭다’는 말을 하는 후배한테 저는 그래요. ‘네가 노력하고 난 다음에 좌절하든지 해라. 클래식 레퍼토리 많이 들어 봤냐. 고전부터 윤이상 같은 현대음악까지 다 공부해본 적 있느냐’고요."

“천재의 신화”에 대한 5개의 댓글

  1. 천재보다는 노력하는 준재가 더무서운법이죠..암요..
    꾸준하게 하는것은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정답인것 같습니다. ㅎㅎ

    하루에 3시간 자고 뭐든 푹빠져 하면 못할수가 없어요..ㅋㅋ

  2. 저도 이 책 읽었어요. 과학사개론 수업의 서평때문에 흐흐
    재밌게 읽고 허접한 서평을 쓴 기억이 나네요.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것이 재능이라고 나는 믿는다’라는 최근에 읽은 책의 문구가 생각나네요. 근데 그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는데, 흥미를 가지는 것이 우선인 것 같네요. 정말 자기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자기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겠죠.

    나도 음악 듣는 재미보다, 연주하는 재미를 붙였다면..
    이러니 난 음악적으로 범인인 거겠죠.

    1. 그러게, 대신 듣는 게 좋아서 계속 듣다 보니까

      너랑 나랑 술 마시면 음악 얘기에 안 심심한 거 아니겠냐..

      하지만 내 새끼는 락스타로 키울꺼다. ㅋㅋ

  3. 잠은 영감의 보고인걸요.^^ 저도 천재에 대한 이야기 조금씩 올려보려해요. 다른방식으로 풀어보고 싶고요. 기존의 천재 선정방식이 너무 일방적이어서 불만이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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