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올림픽이 끝났다. 우리나라는 금메달을 무려 열 세 개나 따내며 종합 7위에 올랐다 예상했던 것 보다 많은 금메달이라 기쁨이 더 크다. 대회 시작 전 금메달이 유력시되던 선수들 대부분이 기대한 것만큼의 결과를 보여주었고, 다크호스라 불리며 은근히 기대를 모았던 선수들도 제 몫을 톡톡히 해주었다. 물론 기대에 못 미친 성적을 올린 선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과거와는 달리 이 선수들에게 아쉬움에 겨운 비난이 아닌, 그들의 열정에 대한 찬사를 보냈다. 왕기춘 선수가 대표적이다 갈비뼈 부상으로 금메달을 어이없이 내주었지만, 고통을 무릅쓴 파이팅에 모두들 찬사를 보냈다. 아테네 올림픽의 챔피언이자 이번 올림픽의 대표 선발전에서 왕 선수와 자웅을 겨룬 이원희 선수가 은메달로 아쉬워하는 후배를 말없이 안아주던 모습 역시 감동으로 남았다.

 

그런데 인터넷 공간에서는 왕 선수와 관련하여 큰 소동이 벌어졌다. 한 여대생이 왕 선수의 미니홈피에 은메달에 그친 것을 원색적으로 비하하는 글을 올린 것이 발단이었다. 일부 네티즌들이 그 글을 여기저기로 퍼 나르기 시작했고, 여대생과 네티즌들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여대생이 끝내 사과하지 않자 네티즌들은 그녀의 신상명세를 사진에 주민등록 번호까지 공개하며 퍼 날랐다. 결국에는 여대생이 다니는 학교의 서버에 네티즌들이 일제히 접속하여 그 학교의 수강신청 업무가 마비되는 웃지 못할 사건까지 벌어졌다.

 

분명 첫 잘못은 여대생에게 있다. 왕 선수를 비난할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신상정보를 퍼 나른 네티즌들의 잘못은 더 크고 위험하다. 여대생은 아직 성인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한 때의 잘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녀도 이번 사건을 통해 많이 반성했을 것이다. 그러나 네티즌들에 의해 공개된 신상정보는 계속해서 인터넷 공간을 돌아다니며 그녀를 괴롭힐 것이다. 이건 21세기의 ‘주홍글씨’다. 누가 네티즌들에게 함부로 누군가에게 주홍글씨를 달 초법적 권한을 주었나? 이번 사건은 사이버 광장의 그늘진 부분을 드러내 주었다.

 

외국의 한 사회학자는 한국이 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인한 세계적 변혁의 정점에 서 있다고 평가했다. 올해 벌어졌던 촛불 시위는 새로운 광장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사이버 광장을 통해 각자의 뜻을 모아 현실 광장에서 함께 행동했다. 시위 과정에서 돌발 상황이 생길 때 마다 사이버 광장에서 정보를 주고 받으면서 상황을 파악했다. 새로운 시위문화는 사이버 광장에 절대적으로 빚지고 있었다. 외신들도 이 부분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이러한 사이버 광장에서의 활동을 두고 누군가는 새로운 집단 지성의 탄생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번 왕 선수 댓글 사건은 사이버 광장이 긍정적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사이버 광장의 가장 큰 특징은 익명성이다. 이 익명성은 사이버 광장에서의 표현을 자유롭게 해 집단 지성을 낳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누군가에게 주홍 글씨를 달아 버리기도 한다. 또 조금이라도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날 선 비난을 서로에게 퍼붓기도 한다. 얼굴과 이름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서로에게 인간적으로 대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다. 사이버 광장에서 누군가를 비판하기 전에, 누군가의 의견에 각을 세우기 전에, 한 번만 생각하자. 상대방도 나와 같은 인간이라고. 그리고 좀 더 따뜻한 마음으로 자판을 두드리는 거다. 이원희 선수가 왕기춘 선수를 따뜻하게 포옹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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