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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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에 ‘역사와 영화’라는 수업을 듣고 있다. 매주 수업시간에 영화를 보고 감상평을 제출해야 하는데, 앞으로 블로그에도 내가 쓴 감상평을 올릴 예정이다. 첫 번째 영화는 콜럼버스를 다룬 영화인 <1492 : The Conquest of Paradise>. 국내에는 <1492 콜럼버스>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신대륙 발견 500주년을 맞아 제작된 영화다. 영화 자체는 별로지만 리들리 스콧 특유의 화면 때깔과 반젤리스의 음악은 거의 쩌는 수준이다. 16년이 지난 지금 봐도 꿀리지 않을 정도.]

 

 

 

우선 고백해야 할 게 있습니다. 영화를 통해 역사를 다루는 이 수업의 목적의식에 따라 영화를 감상하려고 노력했으나, 이성보다는 감성으로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음악때문이었습니다. 결정적인 부분에서 터져나오는 웅장한 선율이 이성을 마비시키더군요.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그려진 콜럼버스를 비교적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콜럼버스가 몽상가라고 생각합니다. 미지의 대륙으로 건너가 만인이 평등한 신세계를 구현하려고한 꿈. 그게 콜럼버스의 꿈이었습니다. 이 영화 전체를 통털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으라면 커다란 종을 망루에 올리는 장면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콜럼버스의 꿈이 부분적으로나마 실현되는 순간이었죠.

 

그는 열정적이고 저돌적인 몽상가였기 때문에 여왕의 관심을 받아 자신의 꿈을 좇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꿈을 ‘이상’이라고 부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우선 제가 생각하는 이상과 꿈의 차이를 얘기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저는 그것이 ‘자기완결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꿈꾸는 새로운 세계가 논리적으로 완결된 성격의 것이라면 ‘이상’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꿈’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콜럼버스가 꿈꾼 신세계가 바로 그랬던 것 같아요. 수업시간에 한 학우님도 언급했지만, 평등한 세계를 꿈꾸면서도 그는 제독의 칭호를 받기를 원하죠. 또 원주민들을 인간적으로 대하면서도 그들의 말은 배우지 않습니다. 이것은 모순입니다.

 

신세계 건설이라는 그의 꿈 자체에 내재한 이런 모순은 종을 올리는 장면에서도 드러납니다. 많은 일꾼들과 함께 콜럼버스는 줄을 당깁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습니다. 콜럼버스는 귀족인 목시카를 찾아갑니다. 썩소를 짓는 목시카에게 콜럼버스는 심기를 건드려 미안하다고 사과합니다. 그리고 그의 재산인 말을 이용해 종을 올리는 데에 성공하죠. 이것은 실리적인 태도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꿈’이 ‘이상’이라고 불리기에는 부족하다는 점을 반증한다고 봅니다.

 

이런 그의 꿈은 영화 후반부에서 점차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지어집니다. 그의 세계는 점차 아비규환이 되어 갑니다. 목시카는 죽기 전에 구체제는 영원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콜럼버스에 의해 죽기 전에 자신의 의지로 목숨을 끊습니다. 이 부분을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라는 영화 제작 당시의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보는 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스콧 감독이 목시카의 마지막 대사를 통해 자신의 메세지를 전달했다는데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만 붕괴된 사회주의를 조롱한 것 같진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스콧 감독이 미국의 현실을 지적한 것 같아요. 미국을 건국했던 사람들은 구 대륙에서는 꿈꿀 수 없었던 진정한 자유와 평등이 살아있는 나라를 건설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어떤가요, 세계에서 빈부의 차가 가장 극심한 나라중의 하나 아닙니까? 실질적으로 미국은 계급사회라는 말도 있습니다. 목시카는 아직 살아있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고안한 미국식 민주주의를 전 세계로 확장시키기 위해 툭하면 전쟁을 벌이죠. 그리고 그 논리는 빈약하기 그지 없습니다. 영화가 개봉되기 바로 전 해인 1991년은 미국이 또 한번의 전쟁을 벌였던 해입니다. 걸프전 말이죠.

 

스콧 감독은 아름다운 열정으로 시작했지만 실상은 빈약했던 콜럼버스의 꿈을 통해 미국인들에게 되묻습니다. 정말 너희가 세계의 자유와 평등을 수호할 자격이 있냐고 말입니다. 사실 너희의 미국적 이상이라는 게 너희 자신도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빈약한 것 아니냐고 말입니다.(허허 너무 많이 나아갔나요? ^^;)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럼버스라는 개인은 아름다웠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당시의 종교적 광기와 음험한 귀족들의 견제를 이겨내고 암흑의 바다를 건너버렸으니까요. 원주민에 대한 기독교적 시각을 보여줄 때에는(선교시켜서 주님의 종으로 만들겠다는 둥의…) 좀 불편하기도 했습니다만, 뭐 어쩌겠습니까, 평생을 기독교적 세계관 안에서 살아온 사람인데 말입니다. 이걸로 콜럼버스 개인을 비판하기엔 무리가 있는 것 같아요. 당시의 공격적인 기독교문화나 유럽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면 모를까.

 

마지막으로 영화 자체에 대한 아쉬움을 덧붙이겠습니다. 콜럼버스의 도전이 그다지 흥미롭게 그려지지 않은 게 아쉬웠습니다. 콜럼버스의 적인 목시카나 귀족들이 너무 평면적으로 그려져서 그런 것 같아요. 특히 목시카는 얼마든지 더 매력적이고 입체적으로 만들 수 있는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콜럼버스가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이 솔직히 좀 지루했습니다.

 

여기까지 제 감상이었습니다. 금연이란 정말 힘드네요. 머리가 멍하고 환청이 들립니다. 이 감상평도 겨우겨우 작성한 거에요 ㅠㅠ 금단증상이 앞으로 더 심해질 텐데 무척이나 걱정됩니다. 그럼 다들 추석 잘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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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평”에 대한 3개의 댓글

  1. 너무 오래 전에 봐서 영화 내용이 기억이 잘 안 났는데 감상평을 읽으니 다시 한 번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저 종을 올리는 장면의 사진을 음악 시디의 커버에서 보고 그의 표정이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알 수 없어서 인상적이었어요. 나중에 영화를 봤을 땐 웃는 것이라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던 것 같지만요.
    이상과 꿈의 차이에 많이 공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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