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코베인, 에디 베더, 레인 스탤리.
나는 레인 스탤리를 제일 좋아했다.
세상을 사는 방법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맞서 싸워서 부서지거나
맞서 싸워도 부서지지 않거나
그냥 무기력하게 죽어가거나.
너바나는 화염처럼 불타오르다가 사라졌고
펄잼은 아직까지 살아남아 근엄하게 외치고 있지만,
앨리스 인 체인스는 그저 무기력하게 사라졌다.
레인 스탤리의 목소리처럼.
음울하게 내뱉는 고음의 보컬 속에서
나는 ‘겁’을 발겼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가 내 분신이라 여겼다.
우리는 항상 싸워야 한다고 뱉어내지만,
정말 그럴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겁이 나니까.
가시가 박힌 채찍이 내 등에 떨어져도,
불에 달궈진 쇠붙이가 내 허벅지 안쪽을 지져도,
싸우겠다고 일어서기란 정말 힘든 일이니까.
말을 뱉어낸 머리는 두개골 속에서 편히 쉬고 있지만
고통을 감내하는 건 몸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겁을 내며 숨는다.
겁내는 자의 목소리. 숨어있는 자의 목소리.
레인 스탤리의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