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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생각]

“하나님. 공부 못하는 저를 구원해 주세요.”

한 아이가 기도한다. 올해 중3인 K군. 그는 공부를 정말 못한다. 한국에서 공부 못하는 학생으로 산다는 건 정말 불행한 일이다. 학교는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일렬로 세운다. 순서에 따라 등급이 부여된다. 앞쪽에 서있으면 좋은 대학에 가고 더 나은 기회를 제공받는다. 뒤쪽으로 갈수록 기회는 점차 줄어든다. 공부가 아닌 다른 재능을 발휘해 성공의 기회를 얻을 확률이 예전보다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턱없이 적은 게 현실이다. 더군다나, 학교는 K군 같은 학생들이 자신의 고유한 재능을 발견할 수 있도록 제대로 도와주지 않고 있다.

“저는 너무나 막막합니다. 빠져 나갈 구멍이 없어요.”

분명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그게 무언 문제냐고 어차피 경쟁력에 따라 계층이 나누어지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고, 그 평가를 학업의 잣대로 행하는 것은 비교적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게다. 얼핏 듣기엔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가? 경쟁의 기본 전제는 기회의 평등이다. 그러나 학교라는 경쟁의 전장에서 싸우는 우리 투사들의 기초 체력이 그다지 평등한 것 같지는 않다. 공교육이 마비되다시피 한 한국의 현실에서 학습능력은 부모의 경제력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적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한 K군의 경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지 않는 한(막노동 끝에 서울대 법대에 진학하는 정도의 노력으로), 경쟁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

“저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이런 K군의 미래를 바꿀 방안으로 수준별 수업제를 실시하자는 사람들도 있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한 해에 SKY에 학생들을 몇 명 보내느냐에 따라 교사들의 ‘등급’이 결정된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가 열등생들에게 얼마나 마음을 쏟을 수 있을까?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수준별 수업을 하자는 것은 ‘아파르트헤이트’나 마찬가지다. 가능성 있는 녀석들을 한 데 모아 집중 육성하여 가능성을 더욱 높인다. 가능성 없는 녀석들은, 그냥 뭐, 가둬 둔다.

“힘들어요. 정말, 죽고싶어요.”

답은 하나다. 경쟁을 완화하는 것. 그런데 이게 또 쉽지가 않다. 학교의 경쟁은 우리 사회 전체의 경쟁적 풍토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사회라는 더 큰 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 있는 투사로 키우기 위해 부모들은 자신의 경쟁력의 크기에 비례하여 아낌없이 투자한다. 그리고 학원과 학교의 선생들은 그들 나름의 경쟁력을 인정받기 위해 아이들을 닦달한다. 우물은 점점 깊어지고 있으며, 동아줄은 몇 안 된다. 무엇보다도 먼저 동아줄을 잡을 기회를 잡은 아이들은, 큰 이변이 없는 한, 유유히 마의 우물을 빠져 나온다.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한 친구들을 뒤로 한 채. 어떻게 하면 K군을, 이 아이들을 구원할 수 있단 말인가?

 

#2 [오라클의 생각]

나는 오라클. 매트릭스를 프로그램한 장본인이지. 인간들은 나를 향해 기도해. 내가 만든 매트릭스 속에서 좌절을 겪을 때, 기적을 보여 달라고 말이야. 물론 들어주는 일은 없는 게 원칙이야. 하지만, 가끔 들어주기도 해. 똑 같은 좌절을 겪는 인간이 너무 많을 경우 매트릭스가 붕괴될 위험이 있거든. 그럴 땐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기도 하지.

지금 매트릭스 속에서 K라는 놈이 나를 향해 기도하고 있어. 이번엔 예외적 상황이야. K같은 기도를 하는 놈들이 너무 많거든. 뭐, 기도를 들어주는 방법은 간단해. 매트릭스 속의 인간들은 모두 데이터. 데이터 처리 방식만 살짝 바꿔주면 되거든. 큐에서 스택으로.

 

#3 [위키피디아]

큐(Queue)는 컴퓨터의 기본적인 자료 구조의 한 가지로, 먼저 집어넣은 데이터가 먼저 나오는 FIFO(First in First out) 구조로 저장하는 방식을 발한다. 영어 단어 queue는 표를 사러 일렬로 늘어선 사람들로 이루어진 줄을 말하기도 하며, 먼저 줄을 선 사람이 먼저 나갈 수 있는 상황을 연상하면 된다.

나중에 집어 넣은 테이터가 먼저 나오는 스택(Stack)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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