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e A Light, 구르는 돌엔 이끼가 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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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방송사 서류 전형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이가 취직 적령기를 넘어서고 있었기에 많이 불안했다. 아주 많이. 소문에 의하면 40%정도만 통과한다고 했다. 두달 전 있었던 다른 방송사 시험에서 낙방했었기에 불안감은 더 컸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기 전에 생각하고 또 생각했으며, 제출하기 전에 읽고 또 읽으며 가다듬었지만, 막상 발표날이 되니 다리는 120BPM의 속도로 후들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롤링 스톤즈의 Shine A Light. 가만히 앉아있어 봤자 아무 일도 못할 테니까 스크린으로 공연 실황이나 빠방한 사운드로 즐기면서 발표를 기다리자는 심산이었다. rock을 좋아하는 후배녀석을 데리고 용산 CGV로 향했다. 불안해서인지 IPOD을 분실하는 소동을 겪기도 했다. 영화가 시작되기 직전 같이 공부하던 형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씨발 마봉춘." 나이 때문에 나보다 합격이 더 절실한 사람인데, 떨어진 모양이었다. 아 이제 발표가 났나보다. 마음은 더 불안해졌고 얼른 극장에서 나가 인터넷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붙던 떨어지던 이 좆같은 불안감은 해소될 테니까. 그때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는 스콜세지와 재거가 공연 준비 과정에서 여러 세부 사항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무대 모양, 카메라 위치, 조명 강도부터 셋리스트까지. 그러나 이 부분은 10분도 채 안된다. 영화의 거의 전부는 비컨 극장에서의 공연 자체에 할애된다. 쿵짝거리는 락앤롤로 영화 상영시간 전부를 채워낸다. 이 공연의의 실황 라이브 앨범도 구해서 들어봤는데, 실제 공연에서는 조용한 노래도 몇곡 불렀고, Paint it Black같은 우울한 분위기의 곡들도 연주된 것 같다. 그러나 이 영화는 As tears Go By 빼고는 흥겨운 곡들로만 채워져 있다. 어쩌면 롤링 스톤즈의 팬이라도 지겹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이것만 놓고 보면 그저 공연장의 열기만을 전해주는 ‘동영상’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저 DVD로도 볼수 있는 공연 실황을 큰 스크린으로 보는 것에 불과한.

 

그런데 그게 아니다. 스콜세지는 공연 실황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지만 단순한 실황 비디오 이상의 메시지를 이끌어낸다. 실황 장면 중간 중간에 삽입된 롤링 스톤즈의 과거 영상들이 실황 장면들에 일종의 일관된 메시지를 부여하는 것이다. 첫 영상은 이들이 데뷔했을 무렵의 인터뷰를 담고있다. 얼마나 더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재거는 이렇게 답한다. "앞으로 2,3년은 가능할 것 같은데요." 그리고 마지막 영상에서는 60살까지 활동할 거냐는 질문에 "당연하다"고 답한다. 이들은 비틀즈처럼 뭔가 거창한 이상을 꿈꾸지 않았다. 그냥 굴렀을 뿐이다. 즐겁게. 향락적으로. 신나게. 중간에 과거 영상에서도 잠깐 등장했지만, 그들의 음악이 음란하다고 기성세대들의 비난을 받고 마약 문제로 법정까지 갔음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굴렀다. 2008년 지금까지. 그리고 스콜세지는 그들이 계속해서 구르고있음을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증명해낸다.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이 영화의 매력은 긴 설명 없이 네 명의 멤버들의 각기 다른 성격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는 것이다. 화려한 섹시가이 믹 재거. 후덜덜 간지의 키스 리처드. 언제나 명랑한 로니 우드. 묵묵히 밴드를 떠받치는 찰리 와츠. 스콜세지는 이들 각각의 성격과 이들이 한 밴드의 밸런스를 이루는 상관관계를 너저분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이들이 무대에서 보여주는 몇몇 행동들, 연주하면서 주고받는 눈빛 만으로 40년 넘게 활동해온 한 밴드의 밸런스를 묘사해낸다. 이건 말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직접 보면 안다.

 

여하튼 이들은 서로의 빈 곳을 매우며 지구상 가장 완벽한 락앤롤 밴드를 만들었고, 지금도 열심히 구르고 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 확인했지만, 난 방송사 시험에 또 떨어졌다. 그러나 의외로 덤덤할 수 있었다. 지금 붙던 떨어지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음을 어렴풋이 깨달았으니까. 언제 한 단계 올라서는 기회가 주어지던, 그건 중요한게 아니니까. 중요한건 항상 굴러야 한다는 거니까. 계속 열심히 신나게 구르다 보면 언젠간 빛이 나를 비추리라 믿는다. Shine A Light!!!

 

PS..  다른 블로거들은 이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둘러보던 중 캐공감가는 글 발견…  수천 자 짜리 다른 글들 보다 훨씬 와닿길래 링크 겁니다.. 지기 님의 싸롱 데 무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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