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트래비스의 곡.
[Good Feeling]부터 [The Boy With No Name]까지,
이들의 앨범이 나올 때 마다, 그들 특유의 감미로운 우울함에 머릿 속이 한참 동안 진공상태가 되곤 했다.
포스팅한 것은 라이브 버젼이다. 영국의 무슨 라디오 방송국에서 연주한 거라던데, 자세힌 모른다.

소년의 눈과 소녀의 귀로 일생을 살아라
좋아하는 트래비스의 곡.
[Good Feeling]부터 [The Boy With No Name]까지,
이들의 앨범이 나올 때 마다, 그들 특유의 감미로운 우울함에 머릿 속이 한참 동안 진공상태가 되곤 했다.
포스팅한 것은 라이브 버젼이다. 영국의 무슨 라디오 방송국에서 연주한 거라던데, 자세힌 모른다.

자주 들어가는 블로그에서 재미있는 글을 발견했다.솔직해지자. 행복해질 것이다. 허지웅님의 말에 동감한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거다. 허지웅님도 ‘솔직해졌더니 행복해졌더라’고 쓰진 않았다는거.
우리는 살면서 수 많은 선택을 한다. 사춘기 이후 내가 택한 선택지들은, 지금 돌이켜보면 대부분 틀린 것들이었다. 좀 더 솔직히 골랐어야 했다. 고등학교는 예고를 갔어야 했고, 대학교는 연영과를 갔어야 했고, 지금쯤 어떤 감독 밑에서 먼지나도록 구르고 있어야 했다. 왜 난 솔직하지 못했을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공부를 곧잘 하는 편이었다. 하기 싫었고 재미도 없었지만, 다른 선택은 하기 힘들었다. 뻔한 이유 때문에.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기에는 난 너무 착했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학원보내려고 악다구니 쓰는 타입이었다거나, 아버지 개 마초였던 건 절대 아니다. 그저 대개 평범한 십대가 그러하듯이, 부모님이 나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는 게 보기 두려웠을 뿐이다.
어쩌면 그건 착한게 아니라 게으름 혹은 방만함이었는 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변 친구들은 모두 취직했는데 혼자 진정 좋아하는 걸 찾겠다며 방황하는 지금에 와서는 더 그렇다고 생각한다.
요즘 더 늦기 전에 고민하는 중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나? 매일마다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기 위한 질문들을 던져 본다. 그런데, 이 질문 너머에 정말 행복이 있을까? 그 너머에 행복이 있으리라고 쉽게 믿어버리기에는, 이 세상은 너무 살얼음판이고, 마음은 불안하기 그지 없다.
난 오히려 더 행복해지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냥 나 답게 살기 위해 질문을 계속 던져 보고 어설픈 결론 대로 따라가 보려 한다. 저 너머에 뭐가 있건.